여름을 닮은 햇살이 비치던 7일 오후 2시. 서울식물원 어린이정원학교(서울 마곡동) 교실에 모인 5, 6세 어린이 10여 명은 눈을 반짝이며 “집 앞요” “놀이터요”를 외쳤다. 한 아이는 “어? 나는 서울랜드에서 지렁이 봤는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5월 개장한 서울식물원에서 ‘땅속의 보물, 지렁이와 친구하기’라는 제목으로 개최한 어린이 생태교실 현장이다.
아이들 앞에 선 강사는 “식물이 잘 자라려면 좋은 흙이 있어야 한다”며 “지렁이는 흙을 먹고 배출하는 ‘분변토’로 땅을 기름지게 만드는 이로운 동물”이라고 설명했다. 처음엔 외형만 보고 “징그러워요”라며 겁을 먹었던 아이들도 지렁이에 대한 지식을 배워나가며 점차 친근감을 느끼는 듯했다. 어떤 아이들은 자기 자리에 놓인 지렁이에게 ‘삐삐’ ‘또롱이’ 등 별명을 붙여주며 함박웃음을 짓기도 했다.
○ ‘꽃 이름’보다 중요한 것부터 가르치기
생태교육은 아이들의 정서 발달에 매우 중요하다. 동식물을 가까이 하며 정서적 안정감을 얻는 것은 물론이고, 관찰하는 과정에서 집중력과 창의력도 키울 수 있다. 하지만 아스팔트와 보도 블록으로 단장된 도시에선 자연을 가까이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봄·여름철을 맞아 식물원이나 공원에 가족 나들이를 갔다가 “이건 무슨 꽃이에요”라는 자녀의 질문을 받을 땐 부모도 선뜻 답해 주기 어려운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이럴 때 부모는 어떻게 말해 주면 좋을까.
양지선 서울식물원 주무관은 “생태교육의 목적은 꽃 이름 외우기가 아니다”라며 “아이가 식물을 관찰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관찰할 수 있는 포인트는 △꽃의 색깔 △이파리의 개수 △꽃받침 모양 △길이나 굵기 등이다. 이름을 당장 알려주지 못하더라도 이런 포인트를 잡아 아이와 꽃에 관해 대화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관찰력이 길러질 수 있다.
단순 관찰을 넘어, 상상력을 자극하고 싶다면 심화질문을 던지는 것도 좋다. 예를 들어 “지금은 초록색인 이 나뭇잎이 가을, 겨울이 되면 어떻게 변할까” “꿀벌이 날아오면 이 꽃의 어디에 앉아 있다가 갈까” “이 나무의 씨앗은 어떤 모양이었을까”와 같은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식물은 ‘계절감각’을 익히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꽃 이름을 정확하게 찾고 싶다면 식물도감, 애플리케이션(앱), 포털사이트 이미지 검색 등을 활용할 수 있다. ‘모야모’라는 앱은 사진을 찍어 올리면 바로 식물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서비스다. 포털사이트의 이미지 검색 창을 통해서도 식물의 이름을 알 수 있다. 양 주무관은 “교육의 효과를 높이려면 직접 책장을 넘겨가며 찾아보는 ‘식물도감’을 활용하는 게 좋다”며 “아이와 공원에 나갈 때 작은 ‘식물도감 핸드북’을 지참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진로, 창의성 교육까지 가능한 ‘생태학습’
연령대에 따라 ‘생태학습’ 내용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관찰을 중심으로 한 학습이 대부분이지만, 고학년이 되면 ‘직업’과 연관 지어 생태학습을 할 수도 있다. 정원사, 농부 등 기존에도 있었던 직업뿐만 아니라 조향사, 플로리스트, 아로마 세러피스트(향기 치료사) 등 직업도 식물과 관련이 있는 직업들이다.
식물을 관찰한 뒤에 어떤 활동을 하느냐에 따라 ‘창의성’이 달라진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것은 돋보기로 식물을 관찰한 뒤에 세밀화를 그려보는 것이다. 식물을 구경하고 얻은 영감으로 동시를 써보는 활동을 할 수도 있다. 7일 서울식물원에서 열린 지렁이 수업에선 지렁이를 관찰한 뒤에 이를 직접 그려보고, 지렁이가 살 수 있는 작은 화분을 재활용 플라스틱 컵을 이용해 만들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으로 생태학습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란 개념을 배울 수 있다. ‘쓰레기를 버리지 맙시다’ ‘꽃을 꺾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가르치는 것보다 작은 화분이나 화단에 식물 한 그루를 심어서 키워 보도록 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서울식물원의 정수민 주무관은 “생태학습은 아이들의 인지적, 정서적 발달에 좋은 영향을 준다”며 “지자체가 운영하는 식물원이나 공원을 방문해 비치된 안내 책자를 바탕으로 자녀와 관찰학습을 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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