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서 “동생 시신을 확인해야 했고, 쫓기다시피 삼촌을 망월동에 묻어야 했으며, 차마 막내 동생의 마지막 모습이 너무 아파서 할머니에게 시신조차 보여드리지 못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안씨는 “그일을 두고 아버지는 평생 아파하셨다”며 “제 아버지도 그 때는 제 나이였을 청년이었을텐데 말입니다”고 했다.
그는 “우리 가족처럼 광주의 일년은 5월부터 시작해서 5월로 끝난다고 이야기 한다”며 “일년 내내 5·18을 이야기 하고, 일년 내내 5·18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주에서 5·18은 애증이고 아픔이고, 기억 그 자체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저희 할머니는 막내아들인 삼촌의 기억도 점차 잃어가신다”며 “가슴에는 아직도 그날이 한으로 남아서 인지 눈물도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안씨는 “아픈기억이라고 잊기 보다는 그 기억을 다잡아 제 가슴에 간직하려고 한다”며 “삼촌을 기억하고 그날 그자리에 있었던 그분들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오월 그날 청년이었던 우리 아버지의 고통과 슬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제 할머리를 위로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잊지 않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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