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수’ 블라인드 테스트… 30%가 수돗물 더 맛있다고 했지만
“배수관 못믿어 그냥 안마셔”
똑같이 생긴 유리컵 석 잔에 1번, 2번, 3번이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있다. 컵마다 같은 양의 투명한 물이 담겨 있다. “1번인가? 아니, 2번인가?” 중학교 1학년 남학생 2명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1번 컵을 들어 물맛을 봤다가 2번이나 3번 컵을 들어 냄새를 맡고 입안에서 혀를 굴려보기도 했다.
1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지하 ‘시민청’에는 10대 학생부터 70대 노인까지 10여 명이 줄지어 서있었다.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가 시민을 대상으로 커피나 술의 블라인드 테이스트처럼 물을 블라인드 테이스트하는 현장이었다. 물 석 잔 가운데 서울 수돗물 아리수를 감별해내는 테스트다. 나머지 두 잔은 시중에서 파는 각각 다른 생수다. 오가던 시민들은 “물맛을 맞힌다니 재미있어 보인다” “테스트 기념품인 텀블러를 받고 싶다”며 걸음을 멈춰 테스트에 참여했다.
대략 10명 가운데 5명은 아리수가 몇 번인지 알아맞혔다. 다만 아리수를 맞힌 까닭은 “시원하고 깔끔했다”는 긍정적인 답변에서부터 “왠지 비린 소독약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는 부정적인 인식까지 다양했다. 중학생 한동균 군(14)은 “평소 학교에서 운동하고 수돗물을 자주 마셔서 그런지 물맛 차이를 잘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같은 학교를 다니는 안재영 군(14)은 “다른 물은 아무 맛이 안 나는데 수돗물은 왠지 소독약 같았다”고 말했다.
테스트를 마치고 ‘가장 좋다고 생각한 물과 그 이유’ 등을 묻는 설문조사 결과 양상도 마찬가지였다. 이날까지 5일간 블라인드 테이스트에 참여한 1505명(남자 796명, 여자 709명) 중 ‘가장 맛있다’고 한 물의 비율은 서로 비슷했다. 아리수를 선택한 사람은 30.5%, 나머지 두 가지 생수는 각각 31.2%와 28.3%였다. ‘잘 모르겠다’는 10.0%였다. 참여자의 40.2%가 아리수 구별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날 테스트에 참여한 시민 대부분은 “밥이나 국같이 끓여서 하는 음식에는 수돗물을 쓰지만 그냥 마시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집까지 수돗물이 오는 과정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단독주택에 산다는 이일봉 씨(77·마포구)와 곽대복 씨(67·동작구)는 “물이 깨끗하더라도 집이 오래돼 수도관이 녹슬었을 것 같아 꺼림칙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정한 씨(43) 역시 “끓일 때는 수돗물을 쓰는데 보통 약수를 마신다”며 “오래된 우리 아파트 배수관이 어떻게 관리되는지 몰라 그대로는 못 마신다”고 말했다.
상수도사업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시내 상수도관의 99%는 녹슬지 않는 스테인리스관 등으로 교체됐다. 나머지 1%는 2022년까지 바꿀 계획이다. 상수도사업본부는 또 사유지 주택 배수관 교체 비용의 80%까지 지원한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지은 지 25년이 넘은 주택 38만9000가구의 수도관 교체를 지원했다. 단독주택은 150만 원, 다가구주택은 250만 원, 아파트는 가구당 120만 원까지 지급된다. 수도관 교체를 원하는 사람은 다산콜센터(120번)나 서울시 8개 수도사업소, 상수도사업본부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다. 시 관계자는 “아리수 품질 검사 역시 무료로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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