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크아웃 아닌데 종이컵 들고 카페 안에…그런 적 있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23일 13시 50분



1년 전 쓰레기 대란을 기억하시나요? 중국의 쓰레기 수입금지 조치 때문에 벌어졌던 대란 이후 1년이 지났지만 넘쳐나는 쓰레기와의 전쟁은 아직 현재진행형입니다. 한국에서 하루에 쏟아지는 쓰레기는 2010년 36만 t(일 평균 배출량), 2015년 40만 t, 2017년 41만 t으로 계속 늘고 있습니다. 매립할 곳이 부족할 정도죠. 플라스틱 생활 쓰레기만 따져도 국내에서 하루 4000t 넘게 배출되고 있습니다. 앓는 것은 지구뿐만이 아닙니다. 망가지는 삶의 터전에서 살아가는 생명도 위협에 시달립니다. 불편함을 넘어 생명을 위협받을 정도죠. 위기의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친환경, 이제는 必환경

“유튜브에서 거북이 코에 꽂힌 빨대를 제거하는 영상을 봤어요. 보는 내내 충격적이고 마음이 아팠죠. 인간이 버린 쓰레기 때문에 말 못 하는 동물들이 고통 받는다고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어요. 아무 생각 없이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할 때가 많은데 그런 저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죠. 또 한편으로는 이대로 가다가는 동물의 고통이 곧 인간의 고통이 되는 날이 올 거라는 걱정도 되고요.”-이주연 씨(24·대학생)

“옛날보다는 좋아졌지만, 여전히 쓰레기가 엉망으로 버려져 있을 때가 있어요. 주차장에 작은 공용 쓰레기통이 따로 있었는데 사람들이 집에서 나오는 생활쓰레기를 몰래 버리는 바람에 결국 없애버렸어요. 가장 곤혹스러운 건 배달음식 쓰레기를 치울 때죠. 음식물이 남아있는데도 다른 쓰레기랑 섞어서 버리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특히 요즘에는 떡볶이가 가장 많습니다. 일일이 손으로 분류할 때는 화도 나죠. 아파트 게시판에 주의해달란 글을 붙여도 소용없어요. 음식물 쓰레기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마구잡이로 버려두는 경우가 많죠. 쓰레기를 수거해 가는 미화원들 보기가 민망해요.”-허모 씨(60대·경기 부천시 오정구 한 아파트 경비원)

“고양이 용품을 인터넷으로 한꺼번에 배송시키다 보니 사료, 간식, 배변 모래부터 문 앞에 상자가 잔뜩 쌓여요. 그날은 쓰레기와의 전쟁이에요. 포장된 상자를 뜯어서 정리하고 포장 비닐과 완충 비닐을 벗기고 나면 거실이 쓰레기로 가득해요. 고양이들은 그사이를 뛰어다니면서 놀기 바쁘고 저는 치우기 바쁘죠. 뉴스 보면 환경 때문에 택배 포장을 줄이기로 했다는데 아직 체감하지 못하고 있어요.”-김주희 씨(26·취업준비생)


“이전에는 환경오염이 삶에 불편함을 주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인간 생존을 위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삶의 존폐를 위협하는 환경오염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직간접적 형태로 나타납니다. 직접적 형태로는 지구 온난화, 폐플라스틱, 미세먼지 등이 있고 간접적 형태는 폭우, 폭설, 큰 규모의 태풍 등이 있습니다. 간접적 형태의 경우 그 피해정도는 크지만 이것이 환경오염으로부터 비롯됐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는 게 문제입니다. 그냥 날씨 문제로 치부할 때가 많죠. 현재 국내에는 미세먼지와 폐플라스틱 문제로 인한 피해가 큰 편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전 세계 플라스틱 소비량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죠. 예산고려를 충분히 해서 대체물질을 개발하는 등 심각한 고민이 필요합니다.”-위정호 가톨릭대 환경공학과 교수

※필(必)환경=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19’에서 언급한 개념. 그는 “그동안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가 ‘하면 좋은 것’이었으나 이제는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필환경의 시대가 왔다”고 썼다.

● 환경보호, 불편함을 수반해


“일회용 봉투 사용이 금지되면서 고민이 많아요. 생선이나 육류는 랩으로 한 번 포장돼있어서 비닐봉지를 추가로 사용할 수 없는데 이것 때문에 고객과 실랑이가 잦아요. 고객 불편에는 공감하지만 회사 방침을 따라야 하니 양해를 구할 수밖에 없죠. 이제 날씨가 더워지면 냉장 보관 식품이 녹기 쉬워질 텐데 큰일이에요. 계산을 담당하는 동료들도 애로사항이 많아요. 쇼핑백을 안 가져왔으니 오늘만 봉투를 무상으로 달라고 버티는 사람들이 많다더라고요. 그나마 갈수록 장바구니를 챙겨오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다행이에요. 시간이 지나면 더 나아지겠죠?”-이모 씨(46·서울 한 대형마트 직원)

“비닐봉지를 못 쓰니 불편해요. 과일이나 채소를 살 때는 습관처럼 비닐봉지에 담았는데 없이 가져가려니 아직은 어색하기도 하고요. 장을 보다보면 이것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도 가끔 봅니다. 특히 생선은 비린내가 날 수 있는데도 팩에 담겨있으니 그냥 가져가야 한다고 하거든요. 마트 직원들도 규정대로 하는 것일 테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불만이 있죠.”-조영란 씨(40·가정주부)

“매장 내 일회용 컵 금지 때문에 고객과 실랑이를 자주 벌여요. 금방 나간다며 일회용 컵을 받고서는 매장에 30분도 넘게 앉아 있는 사람이 반 이상이었죠. 주의를 줘도 들은 체도 안 해요. 바쁘면 그런 분들을 일일이 신경 쓰기 어렵죠. 한 번은 매장 내에서 일회용 컵을 사용하는 분을 사진 찍고는 신고할 거라며 으름장 놓은 손님도 있었어요. 물론 좋은 점도 있어요. 원래는 하루에 일회용 컵을 400개 가까이 사용했는데 지금은 사용량이 확실히 줄었어요. 쓰레기도 많이 줄었고요. 저희는 따로 텀블러 할인이 없지만 확실히 텀블러를 들고 오는 손님도 늘었습니다.”-정모 씨(25·경기 부천시 오정구의 한 커피전문점 아르바이트생)

● 버려지는 것에도 쓰임은 있다

“연구에 의하면 재활용(리사이클링)은 이에 대한 관심, 이용도가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제는 폐기된 자원에 디자인, 창의성을 더해 새로운 제품·서비스를 만드는 ‘새활용(업사이클링)’이 필요합니다. 저희 서울새활용플라자에서는 시민들이 다양한 시설을 이용해 업사이클의 전 과정을 체험할 수 있어요. 워크숍, 세미나, 농부 장터 등의 프로그램도 제공되죠. 또 입주해 있는 40여개의 업사이클 기업들은 양질의 자원을 재사용해서 환경문제 해결에 기여합니다. 버려진 우산으로 예술품을 만들고, 고장 난 LED칩으로 물소독기를 제작해 재난지역에 공급하기도 하죠. 계속해서 시민 참여를 늘리고 지자체와 교류하며 업사이클 인프라를 확장해나가려고 해요. 또 업사이클 모델을 수출하기 위해 국제적 교류에도 힘써야죠.”-윤대영 서울새활용플라자 센터장

“시민들이 기증한 헌 옷 및 물품들을 재판매하고 그 수익금을 소외된 이웃에게 다시 나누고 있어요. 기증받는 것들을 모두 나누면 좋겠지만 판매가 어려워 버려지는 것들도 있죠. 단순히 버리기보다 새롭게 활용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환경에 대한 고민도 자연히 할 수밖에 없었고요. 그렇게 버려지는 것들을 활용하는 국내 첫 업사이클 브랜드 에코파티메아리를 론칭했어요. 버려지는 물품을 이용해 100% 핸드메이드로 가방, 지갑 등의 디자인 제품을 만들고 있죠. 20~30대의 젊은 층이 관심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도록 디자인에도 많이 신경 쓰고 있어요. 현재는 전국 110여개의 매장에서 판매 중입니다.”-‘아름다운 가게’ 관계자

“‘버려지기 위해 태어나는 생명은 없다’는 믿음으로 폐기되는 농수산물을 활용해 반려동물용 상품을 만들고 있어요. 싸게 팔기위해 버려진 걸 쓴다는 편견을 깨려면 기술을 개발해서 이를 기반으로 제품을 생산해야 해요. 기부, 환경보호 같은 취지도 좋지만 뛰어난 제품 품질을 보고 선택하도록 하고 싶었죠. 그게 결국 버려지는 것들의 이미지 제고에도 좋은 영향을 줄 테고요. 생태교란 어종 물고기인 배스를 이용해 반려동물용 간식, 영양제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영양학적 가치는 충분하지만 편견 때문에 버려지는 물고기를 활용한 거죠. 이제 더 나아가 사람이 사용하는 화장품, 영양제, 마스크 팩 등으로 만들어 이용대상을 확대하고 싶어요. 배스, 농산물 외에도 다양한 제품들을 활용해야죠. 해외에서도 업사이클링이라는 사회적 미션을 실현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있습니다.”-강민준 밸리스 팀장

“TV에서 커피 캐리어 재활용법을 본 적 있어요. 기억해 뒀다가 카페에서 캐리어를 이용할 때 버리지 않고 집으로 가져왔죠. 손잡이 부분만 잘라서 칸마다 속옷, 양말을 넣어서 보관합니다. 화장대, 서랍장에 넣어두면 크기도 알맞더라고요. 플라스틱 컵도 깨끗이 씻은 후에 주방 물품을 넣어두기 좋아요. 저는 집게나 지퍼백을 넣어서 보관해요.”-박은영 씨(42·학원 강사)

● “작은 것부터 바꿔요”

“일회용 비닐봉지 규제가 시행된 4월 1일부터 보름간 장바구니 판매량을 집계한 결과 지난해 같은 기간의 5배 이상(440%)으로 증가했습니다. 특히 휴대가 쉬운 접이식 장바구니는 매출이 601%까지 급증했지만 비닐봉지 판매는 21% 감소했어요. 플라스틱 대체품을 찾는 고객도 늘었습니다. 친환경 종이컵은 4배 이상(315%), 실리콘 빨대는 8배 이상(747%), 종이 빨대(484%), 스테인리스 빨대(329%) 등도 많이 판매됐습니다. 필(必) 환경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환경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이러한 흐름에 맞춰 계속해서 친환경 기능 갖춘 제품들을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위메프 관계자


“카페에 갈 때 마다 꼭 텀블러를 챙깁니다. 요즘은 카페마다 텀블러 사용을 권장하기도 하고 할인도 해주니까 까먹지 않고 챙겨가요. 할인 혜택이 쏠쏠하기도 하고 쓰다 보니 습관이 되어서 이제는 늘 가방에 챙겨 다니고 있습니다. 따로 설거지해야 해서 좀 불편하기는 해도 환경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불편을 감수하죠.”-최민지 씨(25·취업준비생)

“주말에 한강 공원에 놀러 오면 종종 야시장 음식을 사 먹어요. 원래는 일회용 그릇에 담아줬는데 최근에는 다회 용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바뀌었더라고요. 다회 용기를 가져가면 할인을 해주는 푸드 트럭들도 많아요. 이번에는 용기를 지참하지 않아 일회 용기에 담아 먹었지만, 다음번에는 플라스틱 접시라도 챙겨올까 합니다. 한강은 워낙 사람이 많다 보니 쓰레기도 어마어마하잖아요. 쓰레기를 한데 모아둔 곳을 지나가면 냄새 때문에 괴로울 때가 많아요. 분리수거가 제대로 되지 않아 여러 쓰레기가 한데 뒤엉켜 있는 것도 문제죠. 조금 귀찮더라도 남은 음식은 싸가거나 따로 버리고, 쓰레기들은 분리수거를 할 필요가 있어요. 의식적으로 노력하려고 합니다.”-황성호 씨(31·회사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쓰레기와 이로 인한 생태계 파괴는 인류에게 더는 무시할 수 없는 위협입니다. 지구 온난화를 막으려다 빙하기가 오고, 회생 불가능한 지구를 버리고 다른 행성을 찾는 이야기가 허무맹랑한 소설이나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많은 이들이 ‘필 환경’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뿐인 지구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거창한 해법만이 정답은 아닙니다. 현실을 살짝 비튼 재치 있는 방법도 얼마든지 좋은 해결방안이 될 수 있습니다. 골칫덩어리 배스를 이용해 반려동물 사료를 만들고 와인 코르크 마개를 초소형 화분으로 사용할 수도 있죠. 조금만 불편함을 감수하면 우리 삶의 터전도 살 만한 곳이 됩니다. 플라스틱 빨대 대신 스테인리스 빨대를, 일회용 컵 대신 머그잔이나 텀블러를 이용하는 거죠. 6월 5일 세계 환경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환경의 날을 맞아 우리 주변, 우리 일상의 작은 것들부터 바꿔가는 게 어떨까요

신무경 기자 yes@donga.com·정혜리 인턴기자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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