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6시 50분경 서울 용산구 공항철도 서울역 15번 출구 앞에 배낭을 멘 남성 셋이 흰 종이를 들고 서있었다. 종이에는 각각 한국어 영어 중국어로 사람 이름이 적혀 있었다. 얼마 뒤 2명의 영어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든 문동환 씨(67)에게 체코에서 온 20대 남성 마르틴이 인사를 건넸다. 두 사람은 영어로 서로를 소개했다. 전날 한국에 왔다는 마르틴은 12일 싱가포르로 떠나기 전까지 서울을 둘러보고 싶다고 했다. 이때 카메라를 든 50대 여성도 문 씨에게 다가왔다. 그는 프랑스에서 왔다고 했다. 다른 두 남성도 중국인 등 관광객들을 맞았다.
문 씨와 두 남성은 서울도보관광을 안내하는 문화관광해설사다. 국내외 관광객이 서울도보관광 홈페이지(dobo.visitseoul.net)에서 서울 도심 33개 도보여행코스 중 하나를 골라 신청하면 서울관광재단이 문화관광해설사와 연결해준다. 해설사는 약속한 날, 약속한 장소에서 관광객을 만나 코스를 같이 걸으며 이에 얽힌 역사와 문화를 설명한다. 신청비용은 없다.
이날 문 씨와 마르틴, 그리고 프랑스 여성은 서울로7017에서부터 한양도성과 숭례문을 걷는 ‘한양에서 서울로’ 코스를 함께했다. 코스를 시작하는 서울로7017에서 문 씨는 서울역과 남대문경찰서 등을 가리키며 옛 한양이 지금의 서울로 이어지는 역사를 영어로 설명했다. 서울로7017의 퇴계로 쪽 기점에서 내려와 5분을 걸어 도착한 남대문교회 앞에서는 이 교회의 역사와 한국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남산 한양도성 성곽을 따라가다 나온 백범광장에선 백범의 독립운동에 대한 궁금함을 문 씨가 풀어줬다. 최종 목적지인 숭례문에 도착해 헤어질 때 두 사람은 문 씨와 악수를 나누며 “한국과 서울을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문 씨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걷기운동도 할 수 있어 1석 2조라고 생각해 시작한 일이 한국을 찾은 이들과 서울을 이야기하는 일까지 더해져 1석 3조가 됐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은행에서 근무한 ‘금융맨’이던 문 씨는 2002년부터 개인사업을 하다 은퇴했다.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2011년 해설사를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역사에 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다른 해설사들과 공부모임을 꾸릴 정도로 서울역사에 열심이다.
해설사는 문 씨 같이 은퇴한 노년들에게 인기가 많다. 공인외국어성적이 있고 걸으면서 장시간 이야기할 수 있는 건강만 유지하고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관광재단 관계자는 “해설사 가운데 상당수가 정년퇴직한 분들”이라며 “특히 직장에서 외국어를 사용해 근무하던 분들이 봉사활동을 하겠다며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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