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경쟁 ‘시험 기계’ 법조인 양성
● 非명문대, 30대 이상은 ‘인서울’ 꿈 못 꿔
● ‘법조인 재목’보다 ‘시험 잘 보는 인재’ 선호
● ‘검(검사)·클(로클럭)·빅(대형로펌)’ 노리고 끝없는 학점 경쟁
● 고3보다 가혹한 ‘로3’ 견디고도 ‘오탈자’ 눈물
올해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학생 152명 중 140명은 이른바 SKY대 출신이다. 서울대(97명), 연세대(23명), 고려대(20명) 출신 비율이 92%를 넘는다. 나머지 8%도 카이스트(KAIST, 4명), 성균관대(2명), 한양대(2명), 이화여대(1명), 포스텍(1명) 등 명문대 졸업자가 채웠다. 올해 서울대 로스쿨은 KAIST와 포스텍을 제외하면 지방대 출신을 한 명도 뽑지 않았다.
연세대 로스쿨 또한 SKY대 졸업자 비중이 높다. 연세대(69명), 서울대(43명), 고려대(2명) 등 3개 대학 출신이 신입생의 86.3%를 차지했다. 고려대 로스쿨은 신입생의 79.0%가 SKY대 학부를 나왔다.
SKY 출신 20대
2019년 로스쿨 입시에서 지방대(KAIST, 포스텍 제외)를 졸업하고 SKY 로스쿨에 진학한 학생은 딱 한 명에 불과하다. 부산대 출신 연세대 로스쿨 합격자다. 신입생을 100명 이상 선발하는 성균관대, 한양대 로스쿨까지 범위를 넓혀도 지방대 졸업자는 4명에 그친다. 반면 이 5개 로스쿨에 입학한 SKY대 졸업생은 488명이다. 전체 신입생의 76.1%에 달한다. 로스쿨 수험생들은 “로스쿨이 명문대 졸업생만 들어가는 ‘SKY 캐슬’이 됐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성균관대 재학생 A씨는 “로스쿨 진학을 준비하기 전에는 내 학벌이 핸디캡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은 비(非)SKY대 출신이라 입시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성균관대 로스쿨은 올해 입시에서 자대 졸업생을 29명(23.5%) 뽑았다. 서울대 졸업생(38명)보다 적고, 고려대(19명) 연세대(15명) 졸업생보다는 많은 수다. A씨는 “SKY대 출신은 전국 어느 로스쿨에서나 인원수 상위에 랭크된다. 반면 기타 대학 졸업생은 자대를 제외하면 합격자가 많지 않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로스쿨 합격을 목표로 ‘반수’를 선택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로스쿨은 2009년 출범 당시 ‘국제화·다원화 시대에 맞는 다양화·특성화·전문화된 법조인 양성’을 목표로 삼았다. 로스쿨 졸업생이 법률 시장에 진출하면 명문대 법학과 출신 일변도였던 법조계 인적 구성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 대학 쏠림 현상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로스쿨 신입생을 획일화하는 또 다른 요소는 나이다. 올해 고려대 로스쿨은 신입생의 96.8%를 20대로 채웠다. 그중에서도 27세 이하 비율이 87.0%(108명)에 달한다. 신입생 절대 다수가 학사과정을 마치고 바로 로스쿨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사법시험준비생모임(사준모)에 따르면 ‘젊은 신입생 선호’ 경향은 거의 모든 로스쿨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사준모가 올해 신입생 나이 정보를 공개한 14개 로스쿨 자료를 취합, 분석한 결과 신입생의 84.3%가 31세 이하인 걸로 확인됐다. 서울 소재 로스쿨은 그 비율이 98.4%까지 치솟았다. 권민식 사준모 대표는 이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로스쿨 설립 당시 목표가 뭐였나. 학벌주의 타파, 다양한 경험을 가진 법조인 양성 아니었나. 각종 지표는 현재 로스쿨이 그 취지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법조인 선발에서 양성으로?
2007년 정부는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로스쿨법)’을 제정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 법조인 공급 방식을 ‘시험을 통한 선발’에서 ‘교육을 통한 양성’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과거엔 사법시험에 합격하기만 하면 누구나 법조인이 될 수 있었다. 지금은 3년간 로스쿨에서 법학전문 교육을 이수한 사람만 변호사시험(변시) 응시자격을 얻는다.
로스쿨법 2조는 법조인이 “국민의 다양한 기대와 요청에 부응하는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갖춰야 할 소양을 규정한다. △풍부한 교양 △인간 및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 △자유·평등·정의를 지향하는 가치관 △건전한 직업윤리관 △복잡다기한 법적 분쟁을 전문적·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식 및 능력 등이다. 로스쿨은 교육을 통해 이런 자질을 갖춘 법조인을 양성하고자 설립됐다.
지금은 거대한 입시학원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로스쿨은 선발 과정에서 지원자의 법학적성시험(LEET) 점수, 토익 등 공인영어시험 점수, 그리고 대학 학점을 중점적으로 본다. 로스쿨 도입 초창기에는 자기소개서와 면접 등을 통한 ‘정성평가’ 비중이 컸다. 하지만 입시 공정성 논란이 일며 ‘정량평가’ 중심으로 개편됐다. 현재 체제에서는 시험 잘 보고 학점 관리 잘하는 ‘모범생’이 SKY 로스쿨에 들어갈 확률이 높다. 로스쿨의 ‘젊은 지원자’ 선호 현상을 잘 아는 대학생들은, 요즘 입학과 동시에 로스쿨 진학을 목적으로 ‘스펙’을 준비한다.
상위 로스쿨에 합격하면 다시 ‘검·클·빅’을 향한 무한 경쟁이 시작된다. 각각 검사·로클럭(재판연구원)·대형 로펌(빅펌)의 줄임말이다. 서울대 출신으로 SKY대 로스쿨을 졸업한 한 변호사는 이 세 가지가 로스쿨 졸업생이 선호하는 3대 진로라고 설명했다.
“신입생 상당수는 이 목표를 위해 입학 전부터 사교육기관에 등록해 주요과목을 선행 학습한다. 1학년 학점이 향후 진로 선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쳐서다. 학점이 잘 나오지 않을 것 같으면 바로 휴학하고 학원 강의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한다. 로스쿨 학생들의 관심은 모두 학점 관리, 변호사시험 준비에 맞춰져 있다.”
로스쿨 졸업 후 검사나 로클럭에 임용되려면 학점이 좋아야 한다. 김앤장 광장, 태평양 같은 대형 로펌에 선발되는 데도 학점이 큰 영향을 미친다. 대형 로펌 상당수가 로스쿨 1학년생 가운데 학점 우수자를 골라 인턴으로 선발한다. 이때 평가가 향후 취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SKY 로스쿨 학생들은 단 한순간도 ‘삐끗’하지 않으려 최선을 다한다. 로스쿨 4기 출신인 오현정 변호사(법무법인 향법)에 따르면 끝없는 경쟁의 연속이다.
“로스쿨 학생들은 엄정한 학사관리하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 교수의 취향에 맞는 답안을 쓰고자 치열하게 경쟁한다. 이미 ‘좋은 점수 받는 기술’이 검증된 학생들끼리의 경쟁이라 그 강도가 매우 높다. 교수의 말을 녹음하고 낱낱이 받아 적어 암기한다.”
전국 로스쿨 학생을 대상으로 열리던 국제인권모의재판대회가 최근 폐지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지원자가 없었다는 후문이다. 한 로스쿨 학생은 “학부 시절 로스쿨 입시를 준비할 때는 누구나 공익, 인권 같은 가치를 고민한다. 하지만 정작 로스쿨에 들어오면 그런 데 관심을 둘 틈조차 낼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결국 지난해 서울대 로스쿨은 대형 로펌에 “1학년생을 대상으로 인턴을 뽑지 말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서울대는 올해부터 그동안 상대평가를 실시했던 1학년 전공필수 과목 점수를 ‘S(satisfactory·통과)’ 또는 ‘U(unsatisfactory·낙제)’로 매기겠다고도 발표했다. 과도한 경쟁을 막기 위해서다.
시험 기계만 살아남는 구조
전문가들은 로스쿨 교육을 정상화하려면 변시 방식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명순구 고려대 로스쿨 교수 얘기다.
“현재 변시는 수많은 판례 암기를 요구한다. 물론 법 원리와 연계된 핵심 판례는 암기해야 한다. 그런데 변시는 말단실무적 판례 암기까지 요구한다. 정답 시비를 피하고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구석에 숨은 판례들이 시험장에 들어오게 된다. 대학에서 이에 맞춘 수업을 할 수는 없다. 많은 학생이 정규수업과 별도로 변시를 준비한다. 이는 로스쿨 제도에 대한 일반인의 불신을 야기하는 원인이 된다.”
검사 출신으로 현재 로스쿨에서 강의하는 한 교수도 이에 동의했다.
“과거 사법시험은 탈락자를 가려내려고 배배 꼬인 8지선다 문제를 출제했다. 지금 변시도 그렇다. 필요 이상으로 어렵다. 법률 실무와도 동떨어져 있다. 변시 점수와 변호사로서의 실력이 일치하지 않는다.”
서울대 로스쿨 교수들은 지난해 ‘로스쿨 10년의 성과와 개선 방향’ 간담회에서 이 문제를 지적하는 연구 보고서를 냈다. 그에 따르면 학생들이 변시 문제를 풀고자 암기하는 판례 수는 이미 1만 개를 넘어섰다. 로스쿨 학생들은 “누구나 스마트폰만 켜도 법조문과 판례를 찾을 수 있는 시대에 왜 이런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쉰다. 하지만 변호사가 되려면 변시를 통과해야 하므로 ‘족집게’ 사교육 강사를 찾아다니며 암기형 공부에 매달린다.
이런 상황에서 선택과목 쏠림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현재 변시 응시자는 7개 전문법 분야 중 하나를 선택해 시험을 치른다. 천편일률적인 법조인 양성을 피하고자 만든 제도다. 그러나 지난해 7회 변시에서 응시자 3240명 중 1404명(43.3%)이 국제거래법을 선택했다. △환경법 695명(21.5%) △노동법 415명(12.8%) △경제법 309명(9.54%) △국제법 241명(7.44%) 등이 뒤를 이었다. △지적재산권법 95명(2.93%) △조세법 81명(2.5%) 등은 선호도가 매우 낮았다. 법조계 관계자에 따르면 “시험범위가 넓고 외울 게 많아서”다. 지난해 법무부가 내놓은 수험생용 법전에서 조세법 해당 분량은 810쪽이었다. 반면 국제거래법은 35쪽에 그쳤다.
지방 로스쿨 충격파
최근 갈수록 높아지는 변시 탈락률도 로스쿨 학생들로 하여금 ‘효율적 공부’에 매달리게 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1월 치러진 8회 변시는 3308명이 응시해 1691명이 합격했다. 응시자 대비 합격률은 50.78%로 절반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서울대 로스쿨에서도 188명이 응시해 36명이 탈락했다. 그래도 SKY 로스쿨은 각각 합격률 80.9%(서울대), 76.4%(고려대), 69%(연세대)를 기록하며 1, 2, 3위를 차지했다. 반면 지방으로 가면 합격률이 크게 떨어졌다. 합격률이 23.5%에 그친 원광대 로스쿨을 비롯해 제주대(28.1%), 충북대(37.3%), 동아대(31.6%), 전북대(35.6%) 등이 하위권을 형성했다. 경북대(45.5%), 충남대(41.3%), 전남대(40.4%) 등 지방거점국립대 로스쿨 변시 합격률도 50%를 밑돌았다.
현행 변호사시험법은 로스쿨 졸업 예정 시점부터 5년 안에 5회만 변시에 응시할 수 있도록 제한한다. 5년이라는 기간 제한과 5회라는 횟수 제한이 동시에 있다. 로스쿨 졸업 후 5년이 지났으면 시험을 3번만 치렀어도 평생 변시 응시 기회를 잃는다. 다시 로스쿨 입학시험을 치르고 3년간 교육과정을 수료해도 변시에는 응시할 수 없다. 이들을 흔히 ‘다섯 번 탈락했다(五脫’)는 의미로 ‘오탈자’라 부른다.
법무부는 지난해 말 2009년부터 2011년 사이에 입학한 로스쿨 1~3기 졸업생 중 오탈자가 441명이라고 밝혔다. 올해 치러진 시험에서도 적잖은 이가 이 제한 규정에 걸려 변시 응시 자격을 잃은 것으로 분석된다. 예를 들어 2012년 입학한 서울대로스쿨 4기생 가운데 11명이 올해 변시를 치렀다. 이 중 합격자는 4명에 그쳤다. 불합격한 7명 가운데 휴학하지 않고 졸업한 사람은 이번에 오탈자가 된다. 지방 국립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시를 다섯 번 치렀으나 합격하지 못한 한 오탈자는 “7년 동안 법 공부에만 매달렸다. 응시자격을 빼앗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변시 합격률이 계속 지금 상태로 유지되면 오탈자 폭증이 머잖아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때 변시는 ‘웬만하면 떨어지지 않는 시험’으로 여겨졌다. 법무부도 변시의 학교별 합격률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3월 대한변호사협회가 낸 정보공개 소송에서 패소해 자료를 공개하게 됐다. 결국 참담한 실상이 드러났다. 특히 최상위 로스쿨과 최하위 로스쿨 간 합격률 격차가 57.4%포인트에 이르는 것에 충격을 받은 이가 적잖다. 전문가들은 이 여파로 지방대 로스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나빠지고, 신입생 지원 감소, 재학생의 휴학·자퇴 등이 이어지면 로스쿨 제도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재 전국 로스쿨 25개 중 11개가 지방에 있다. 지방대 로스쿨은 정원의 20%를 지역인재로 선발한다. 지역 균형을 고려한 조치다. 그러나 로스쿨별 변시 합격률이 공개되면서 지역인재 선발에 난색을 표하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이 경우 SKY대 출신 로스쿨 진학률이 지금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
한편에서는 경쟁력을 잃은 지방 로스쿨이 통폐합으로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로스쿨 준비생들이 활동하는 온라인 카페 등에서는 벌써부터 지방대 로스쿨에 진학해도 되는지를 놓고 설전이 벌어지는 상황이다. 지방사립대 로스쿨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재학생들도 충격에 빠졌다. 변시에 합격하려면 휴학하고 신림동 학원가에서 공부에만 매달려야 한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모든 흐름이 로스쿨 도입 취지에서 벗어난 ‘사법시험 시즌2’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사법시험 시즌 2?
김선수 대법관이 2008년 펴낸 책 ‘사법개혁 리포트’를 보면 현재 로스쿨의 문제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김 대법관은 노무현 정부 대통령비서실 사법개혁비서관으로 일했다. 로스쿨 도입을 주도했다. 당시 그가 밝힌 사법시험을 폐지해야 하는 이유를 정리하면 이렇다.
△대학 법학교육과 법률가 양성이 단절돼 법학교육이 표류하고 법과대학이 고시학원화한다. △파행화된 대학 법학교육이 경쟁력 있는 전문 법조인 부족을 초래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법률 수요에 부응하지 못한다. △법조인 양성교육의 지역 간 불균형이 심각하다. △사법시험이 법률가 자격시험이 아니라 판·검사 채용시험 성격으로 운영된다.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장기간 사법시험에 빠져 폐해가 발생한다. △사법시험이 법학뿐 아니라 다른 분야 대학교육 파행까지 초래한다. △법학 외 인문교양 및 전공지식이 결여된 상태에서 선발된 법조인의 응용력·창의성이 부족하다. △사시 1차는 객관식 시험으로 미리 정해진 정원에 맞춰 합격자를 선발하는 데 치중해 지엽적인 암기식 문제에 집중돼 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고자 등장한 게 로스쿨이다. 그러나 10년이 흐른 지금 같은 문제를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다. 법조인력 양성 방법을 개혁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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