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지역의 중학교 2학년생 A 군 등 6명은 3월부터 교실마다 돌아다니며 이렇게 으름장을 놨다. LG유플러스에서만 제공되는 월 3300원짜리 ‘듀얼 넘버’ 서비스에 가입하라고 강요한 뒤 새로 생성된 휴대전화 번호를 빼앗아 선배들에게 상납하기 위해서였다. 듀얼 넘버는 휴대전화 한 대로 번호 2개를 쓸 수 있게 해주는 부가서비스다. A 군 일당은 같은 학교 1, 2학년 학생들한테서 받은 번호를 선배들에게 넘겼다. 선배들은 이 번호를 1개당 3만 원을 받고 인터넷을 통해 팔았다.
○ 범죄 행위 강요하는 청소년들
요즘 청소년들의 학교 폭력은 단순히 ‘왕따’시키고 괴롭히는 수준을 넘어 지능적이고 잔혹하게 변하고 있다. 밴드 잔나비 멤버 유영현 씨(27)의 학교 폭력 때문에 10년 넘게 고통받아 왔다는 피해자들의 뒤늦은 폭로가 나올 만큼 학교 폭력의 상처는 오래간다.
초등학교 동창 7명으로 구성된 경기 남부지역의 한 중학생 폭력조직은 올해 흉기를 들고 거리를 배회하는 ‘동네의 무법자’였다. 이들은 거리에서 흉기를 휘둘러 현수막이나 나뭇가지를 자르며 위세를 떨쳤다. 거리에서 마주친 또래 학생이 노려봤다는 이유로 30여 분 동안 집단 폭행해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혔다. 위력을 과시하기 위해 동네 청소년 20여 명을 불러 폭행 장면을 지켜보게 하기도 했다.
대전의 여중생 13명으로 구성된 한 폭력조직은 왜소한 동갑내기 남학생 B 군을 6개월 동안 괴롭혔다. B 군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중국 음식점에 발신번호 표시 제한으로 하루 수십 통씩 허위 주문 전화를 걸었다. B 군에게는 “짱× 몇 그릇 가져와라”며 놀려댔다. 젊은 교사들도 이 폭력조직의 타깃이 됐다. 이들은 ‘○○○ 선생 수업시간에는 모두 엎드려라’고 지시했다. 겁에 질린 학생들은 이들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후배들에게 중고거래 사기 범죄를 강요하고 돈을 뜯어내는 학교 폭력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남 거제시의 중학생 C 군 등 2명은 자기 통장을 학교 후배들에게 건넨 뒤 중고거래 사이트에 명품 가방 등을 허위로 팔고 돈을 인출해오라고 강요했다. 이들은 후배들이 지시에 따르지 않자 모텔에 감금하고 마구 때렸다. C 군 등은 후배들에게 인터넷 사기범죄를 강요해 챙긴 400만여 원으로 가출 생활을 이어갔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검거된 소년범들의 범죄 유형을 보면 사기 등의 지능범죄로 붙잡힌 경우가 매년 1만 명 안팎이나 된다.
○ 학교·가정서 방치되는 청소년 돕는 경찰
경찰은 학교전담경찰관(SPO) 1138명을 전국에 배치해 피해 학생들을 돕고 가해 학생을 계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인천 미추홀경찰서 김성우 경장(34)은 지난달 ‘학교전담 경찰관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를 통해 초등학교 6년 동안 줄곧 왕따를 당해온 중학교 1학년 D 양의 사연을 접했다. D 양은 중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집단 괴롭힘이 계속 이어지자 수차례 자해와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고 털어놨다. 믿었던 친구에게 자해의 상처를 보여주며 심리적 고통을 털어놨는데 오히려 이상한 소문이 나 우울증이 심해졌다.
김 경장이 즉각 D 양을 만나보니 학교 폭력뿐 아니라 집안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심각했다. D 양 어머니는 “엄마가 선생님인데 너는 공부를 잘해야 한다”며 일정 목표 점수를 넘기기 전까지는 외출까지 통제해왔다.
김 경장은 D 양을 괴롭힌 학생을 학교폭력위원회에 회부시키도록 하고 D 양 어머니를 만나 여러 지원책을 제시했다. D 양은 요즘 우울증 약을 끊고 학교생활을 즐기며 음악가의 꿈을 키우고 있다. D 양은 김 경장에게 “병원에 갈 때마다 엄마가 지쳐가는 게 보여 슬펐는데 경찰 아저씨가 내 말을 잘 들어주고 직접 나서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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