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를 거치면서 집회·시위 문화가 성숙됐습니다. 사회에 복귀해도 범행이 반복될 우려가 작아졌어요.”
올 1월 서울고법의 한 재판부는 폭력 집회를 벌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조합원 이모 씨(54)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이 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면서 형의 집행을 4년간 유예한다고 밝혔다. 이 씨는 경찰관 75명이 다친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폭력을 선동한 인물로 꼽혔다. 민중총궐기 집회 후 경찰 수사를 피해 2년간 도주한 전력도 있었다.
판결 선고 2개월 뒤인 올 3월 민노총 조합원 수백 명은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집회 때 국회 경내로 불법 진입을 시도했다. 이들은 미리 준비한 밧줄로 경찰이 쳐놓은 철제 안전펜스를 뽑아냈다. 조합원들은 국회 진입을 막는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민노총 조합원들은 지난달 22일과 27일에는 현대중공업의 법인 분할에 반발해 이 회사 서울 사무소와 울산 본사 본관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민노총의 폭력 시위가 근절되지 않는 건 법원이 시위 참가자들의 폭력을 가볍게 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본보는 집회 도중 경찰을 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2015년 1월∼2019년 5월 판결을 선고받은 민노총 조합원 78명의 판결 내용을 분석했다. 그 결과 법원은 47명(60.2%)에게 징역형을 선고하면서도 그 집행을 유예해 줬다. 집회 주동자가 아닌 28명(35.8%)에게는 500만 원 이하 벌금형을 선고했다. 집회 도중 경찰관을 때린 행위에 대한 법정 형량이 낮게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대법원 양형기준은 특수공무집행방해를 범한 피고인에게 기본 징역 2년에서 4년을 선고하도록 권하고 있다. 경찰 여러 명이 다쳤다면 가중처벌 대상이어서 최대 징역 3년에서 7년까지 선고할 수 있다.
하지만 법원은 ‘폭력 집회’를 벌인 피고인들에게 양형기준보다 낮은 형량을 선고하고 있다. 재판장이 직권으로 형량을 절반 가까이 깎아주는 일명 ‘작량감경’을 하는 것이다. 본보가 분석한 판결의 피고인 78명 중 50명은 징역형을 선고받았는데 이 중 36명(72%)은 양형기준보다 낮은 처벌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은 회사를 불법 점거하고 이를 말리는 경찰관 30여 명을 폭행한 혐의로 민노총 금속노조 조합원 오모 씨(47) 등 7명에게 2017년 10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복면을 쓴 조합원 70여 명과 함께 회사 현관 유리문을 깨뜨리고 건물을 점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범행에 우발적으로 가담한 측면이 있다”며 형량을 깎아줬다.
대구의 한 골프클럽에서 폭력 집회를 벌인 민노총 조합원 12명은 지난해 5월 1심에서 모두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조합원들은 경찰관 한 명을 에워싸고 폭행해 기절시키기도 했다. 12명의 조합원 중 일부는 폭력 집회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동종 전과가 있었다. 이들의 재판을 맡은 판사는 감형 사유로 “해고 근로자를 돕기 위해 범행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폭력 집회 전과가 있거나 범행을 미리 계획한 정황이 있는데도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건 법원이 폭력 집회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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