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파나마서 LA로 출국하려다 붙잡혀 전날 송환
서울구치소 수감…24일 정태수 행적 등 조사 예정
회삿돈 320억원 횡령 혐의를 받고 잠적했던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넷째 아들 정한근씨(54)가 캐나다 시민권자인 고등학교 동창 이름으로 미국 시민권을 얻는 신분세탁을 하며 해외 도피생활을 이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검찰청 국제협력단(단장 손영배)은 회사자금 322억여원을 횡령해 국외에 은닉하고 253억여원의 국세를 체납한 채 21년간 해외도피 생활을 해온 정씨를 추적 10개월여만에 국내로 송환한 경위를 23일 밝혔다.
지난 18일 파나마에서 붙잡혀 전날 오후 국내로 송환된 정씨는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2023년 9월 정씨의 재판시효 만료를 앞둔 검찰은 2017년 6월 정씨가 미국에 체류중이라는 인터뷰 방송을 단서로 지난해 4월 미국에 범죄인인도를 청구했으나 정씨의 미국 내 소재지가 확인되지 않아 그 절차가 진척되지 못했다.
이에 국제협력단이 작년 8월부터 정씨의 사건기록과 정씨 가족의 출입국 내역을 검토한 결과, 정씨 아내와 자녀가 캐나다에 거주하는 사실을 확인하고, 캐나다 국경관리국(CBSA) 일본주재관과의 국제공조애 나섰다. CBSA의 협조를 토대로 정씨 가족의 캐나다 거주를 위한 서류에 정씨가 아닌 정씨의 고등학교 동창으로 추정되는 캐나다 시민권자 유모씨(54)의 이름이 스폰서로 사용된 점을 단서로 추적에 돌입했다.
이후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 한국지부와 CBSA 일본 주재관의 협조를 받아 정씨가 유씨의 이름을 이용해 여러 영문이름으로 캐나다 영주권과 미국 시민권을 순차로 취득해 신분을 세탁하고 2017년 7월 미국 시민권자 신분으로 에콰도르에 입국한 사실을 확인했다.
국제협력단은 이에 따라 지난 2월 에콰도르에 정씨에 대한 범죄인인도 청구를 하고 에콰도르 현지 출장을 통해 정씨의 송환을 시도했으나 지난 4월 범죄인인도조약이 체결되지 않은 에콰도르 대법원에 의해 인도가 거절됐다.
이후 에콰도르 외교부·내무부와의 화상회의와 공문발송으로 정씨의 체류비자 연장불허와 추방을 협의하던 중 에콰도르 내무부로부터 정씨가 LA를 목적지로 지난 18일(에콰도르 현지시각) 오전 4시23분발 파나마행 비행기로 출국 예정이라는 사실을 이륙 약 1시간 전에 통보받았다.
검찰은 HSI 한국지부와 협의해 HSI 한국지부·파나마지부를 통해 파나마 이민청에 정씨의 인터폴 적색수배 관련 정보를 전달하고 파나마 이민청은 지난 18일 현지시각 오전6시35분경 파나마에 도착한 정씨를 공항 내 보호소에 구금했다.
대검 국제협력단은 법무부(국제형사과), 외교부(재외국민안전과) 및 파나마 등 재외공관, 경찰청(외사수사과 인터폴계) 등과 정씨의 호송방안을 협의해 파나마 대사관 소속 영사가 정씨를 면담, 정씨가 자진귀국 의사를 밝힘에 따라 브라질 상파울루와 UAE 두바이를 경유해 정씨를 국내로 송환했다.
정씨는 한보그룹 자회사인 동아시아가스㈜ 운영자로 1997년 11월경 이 회사 대표이사와 기획부장과 공모해 동아시아가스㈜가 보유한 루시아석유㈜ 주식의 매각자금 322억원을 스위스에 있는 타인 명의 계좌에 예치해 횡령하고 재산을 국외로 은닉한 혐의를 받는다.
정씨는 1998년 6월17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받은 이후부터 잠적했고 2008년 9월24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법률위반(횡령)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재산국외도피죄)로 기소됐다. 재판중인 이 사건은 2023년 9월23일 재판시효 완성 예정이다.
공범인 정모 동아시아가스 대표이사와 임모 기획부장은 1999년 5월경 각각 징역 3년과 2년6월 및 공동 추징금 434억원을 선고받은 판결이 확정됐고 추징금에 대해선 2008년 8월 집행불능 처리된 상태다.
국제협력단에서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검사 예세민)는 전날 정씨를 상대로 1998년 검찰 조사 이후 최초 출국 경위 등에 대해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정씨가 피로감을 호소함에 따라 조사를 진행하지 못한 검찰은 24일 정씨에게 그가 받는 횡령 혐의와 아버지 정태수 회장의 행적 등을 따져 물을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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