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보조금 수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 70대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할머니의 의사에 반해 지원금을 빼돌렸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28일 서울서부지법 형사3단독 최지경 판사는 횡령 혐의로 기소된 김모(74)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김씨에게 1년6개월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최 판사는 “피고인이 피해자 명의로 입금받아 보관 및 관리하던 지원금을 현금으로 인출하거나 다른 계좌로 송금한 사실은 인정된다”고 봤다.
다만 “피고인은 당시 만 84세의 고령으로 하반신이 불편해 휠체어를 쓰던 피해자를 (중국에서) 모셔와 자기 집에서 함께 생활하고, 피해자의 건강이 악화되자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게 했다”며 “국내에서 피해자의 유일한 보호자로 일체 비용을 부담하며 피해자를 부양하고 제도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고 했다.
이어 “피해자는 아들에게 ‘(자신이) 고국에 돌아올 수 있도록 피고인이 도움을 줬으며 이건 돈으로 갚을 수 있게 아니다, 죽더라도 피고인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고 말했다”며 “피해자의 아들은 ‘피고인은 가족과 같은 관계’라며 피해자가 모든 돈을 맡긴다고 한 뜻에 따라 (피고인이 가진) 나머지 지원금도 달라고 청구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는 2016년 5월 모든 지원금 처분 권한을 (피고인에게) 위임한 것으로 보이고, 이후 의사소통 능력이 저하됐으나 피해자 언행과 유일한 상속인인 아들의 이야기로 볼때 이 처분권은 보장된다”고 판단했다.
또 “피고인이 (인출·송금한 지원금을) 피해자를 위해 사용했다고 하면서 구체적으로 사용내역을 증빙하지 못했다고 해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임의로 사용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범죄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김씨는 2012년부터 지난해 4월까지 위안부 피해자인 고(故) 이귀녀 할머니의 보조금 2억8000여만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는다.
경찰,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2011년 중국에 있던 이 할머니를 국내로 데려온 뒤 2012년 여성가족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시켰다.
이후 이 할머니의 통장을 직접 관리하며 현금인출기로 돈을 뽑거나 자녀 계좌로 돈을 보내는 등의 방식으로 총 332차례에 걸쳐 지원금을 가로채 생활비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김씨를 횡령 혐의로 기소했고, 이 할머니는 약 한달 뒤인 12월14일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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