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 출신 서울대 음대생 졸업 직후 암 발병
고된 투병생활에도 “다시 꼭 트롬본 불거예요”
지난달 22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입원실. 기자가 병상에 기대어 앉아있는 20대 여성에게 “어떤 게 가장 힘드냐”고 물었을 때 이 여성은 말없이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그러곤 스마트폰 메모장을 열어 몇 글자를 입력한 뒤 기자에게 건넸다.
‘악기를 연주하지 못하는 것과 동생들이 걱정하는 거요.’
이 여성은 올해 3월 두경부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코에는 영양공급용 튜브가, 목에는 인공호흡 튜브를 연결되어 있어 말을 할 수 없다. 기자가 물으면 그는 필담으로 응답했다. 방사선 치료 과정에서 머리카락이 다 빠지는 등 힘겨운 투병을 하고 있었지만 스마트폰 버튼을 두드리는 그의 손가락에서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 보육원에서 키워온 음악 열정…서울대 음대 합격 결실
그의 이름은 최슬기(25·여). 서울대 기악과에서 트롬본을 전공했고 올해 2월 졸업했다. 암 진단을 받은 건 졸업 후 한 달 만이다. 오케스트라 취직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최 씨는 아동양육시설인 구세군 서울후생원 출신 첫 서울대생이다. 2014년 입학 당시 화제가 됐다. 그해 여성가족부는 ‘청소년의 달’을 맞아 어려운 환경을 극복한 최 씨에게 장관 표창을 해다.
최 씨는 8세 때 두 동생과 함께 후생원에 맡겨졌다. 부모를 대신해 두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을 어려서부터 느꼈다. 최 씨를 오랜 시간 지켜봐온 김지현 후생원 부장은 “슬기는 큰 언니 같은 아이였다. 자신의 동생뿐만 아니라 이곳 아이들까지 잘 다독였다”라고 말했다.
최 씨와 초등학교 4학년 때 후생원 밴드에 들어가면서 트롬본과 인연을 맺었다. 트롬본 특유의 굵은 음색은 그에게 위안을 줬다. 최 씨는 “직접 트롬본을 불 때면 평소 느꼈던 어려움도 잠시 잊게 되고, 스트레스도 사라지는 기분이었다”라고 말했다.
최 씨는 중학교 3학년 때 ‘트롬본 연주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가난한 형편 탓에 예고 진학은 꿈꿀 수 없었다. 차선책으로 관악합주반이 있는 신진자동차고교에 입학해 트롬본을 연주했다. 최 씨의 열정을 알아본 제이슨 크리미 서울시립교향악단 부수석은 최 씨가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주기적으로 트롬본을 가르치는 재능기부를 했다.
최 씨는 2014년 서울대 음대에 합격했다. 최 씨는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생활이 좀 더 나아질 거란 희망도 생기고 훌륭한 트롬본 연주자가 될 거란 자신감도 생겼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 진학 후 하루 6~7시간 트롬본을 불면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비를 마련했다.
● 허망하게 찾아온 암 발병 통보
최 씨는 졸업을 한 달 앞둔 올해 1월 몸에 이상 징후를 느끼기 시작했다. 트롬본 연주를 하지 못할 정도로 입이 아팠다. 하지만 빨리 오케스트라에 취업해 트롬본 연주자로서 첫 발을 내딛어야 한다는 생각에 몰두했다. 병원에 가지 않는 사이 컨디션은 계속 악화됐다. 결국 3월 최 씨의 친구가 집에서 쓰러져 있는 최 씨를 발견해 응급실로 이송했다.
20대 중반, 키 173㎝ 건장한 체격의 여대생이 암 판정을 받으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 씨의 상태는 곧 바로 중환자실에 입원할 정도로 심각했다. 최 씨는 “암 판정을 받았을 때 ‘왜 하필 나일까’ 하는 세상이 원망스러웠다”고 말했다.
투병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간병인을 구하는 것부터 애를 먹었다. ‘이렇게 키가 큰데 어떻게 부축하냐’며 간병인 두 명이 연달아 간병을 거절했다. 유일한 가족인 동생들은 직장에 다녀 최 씨를 돌볼 수 없었다. 암 판정을 받았을 때도 담담한 표정을 지었던 최 씨는 막막한 상황에 이 날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다행히 간병인은 구했지만 튜브를 통해서 영양분을 공급받고, 늘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최 씨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최 씨는 그동안 트롬본을 불 수 있도록 도움을 줬던 사람들, 최 씨의 병원비를 모금해준 교수와 선후배, 동기들을 떠올렸다. 그는 “도와준 사람들을 생각하니 ‘이대로 주저앉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중환자실에서 나와 한 차례 방사선 치료를 받은 최 씨는 재활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요즘은 스스로 몸을 일으켜 걷는 연습이 한창이다. 일반병실로 온 지 한 달여 만에 45도정도 까지 몸을 일으킬 수 있게 됐다. 앉을 수 있게 되니 걸어야겠다는 의지도 생겼다.
투병 중 걷기 연습은 아기가 첫 걸음마를 떼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일어서면 어지러웠다. 기관지를 절개해 목을 통해 호흡을 하는 상황에서 걸을 때면 가래를 계속 뱉어내야 했다. 하지만 최 씨는 포기하지 않고 벽에 설치돼있는 손잡이를 잡으며 한 걸음씩 떼는 연습을 해나갔다. 병실 복도를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돌아다닐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 “다시 트럼본 불며 받았던 도움 베풀고 싶어”
최 씨의 몸 상태는 아직 불안정하다. 이달 초 컨디션이 나아지는 듯 하다 폐렴에 걸리면서 1차 퇴원이 미뤄졌다. 앞으로 네 번의 방사선치료와 항암주사 과정도 남아있다. 하지만 최 씨는 하루하루 의지를 다잡고 있다. 그는 “트롬본 연주자가 돼 무대에도 서고, 후학도 양성해 그동안 받았던 도움들 하나씩 베풀고 싶다”라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병원에서 나오며 최 씨가 스마트폰에 적어준 필담 내용을 다시 살펴봤다. 목소리를 듣지는 못했지만 한 줄 한 줄 이어지는 그의 글 속에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지금은 부모님이 보고 싶지 않아요. 섭섭함 때문이 아니라 잘된 모습을 보이고 싶었는데 아프게 돼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에요. 병을 빨리 이겨내 트롬본도 불고, 동생들도 걱정 없이 살게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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