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서 주는 300만~500만원… 10여년 연락 없던 부모들 찾아와
“돈 주면 같이 살 수 있다” 꼬드겨… 정착금만 챙긴 뒤 다시 연락 끊어
보육원장이 기부 요구하며 뺏기도
최모 씨(20)는 요즘 막노동과 아르바이트로 간신히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어떤 때는 수중에 한 푼도 없어 밥을 사달라고 주변에 사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 씨는 2년 전 보육원을 떠날 때만 해도 1000만 원이 넘는 돈을 갖고 있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받은 자립정착금 500만 원에다 자신의 예금을 합친 돈이었다.
그런데 1000만 원이 넘는 이 돈은 어머니가 모두 가져갔다. 최 씨는 중학교 2학년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보육원에 맡겨졌다. 그런데 최 씨가 보육원을 떠날 무렵 어머니가 찾아왔다. 아들을 보육원에 맡긴 뒤로 5년간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는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새아버지 병원비가 필요하다”며 돈을 달라고 했다. “돈을 주면 함께 살 수 있다”는 말도 했다. 최 씨는 갖고 있던 돈을 전부 드렸다. 하지만 돈을 챙긴 어머니는 아들과 연락을 끊었다. 최 씨는 “어머니에게 돈을 보낸 게 너무나 후회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라 전국 지자체에서는 보육원 퇴소자들에게 300만∼500만 원의 정착금을 준다. 정착금 지급 시기는 대개 보육원을 떠나는 18세이다. 대학 진학이나 장애 등의 이유로 퇴소 시기가 늦춰지면서 스무 살이 넘어 정착금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정착금을 최 씨의 경우처럼 갑자기 나타난 부모가 챙기는 사례가 적지 않다. 김모 씨(24·여)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지난해 김 씨가 보육원을 퇴소할 당시 어머니가 나타났다. 어머니는 11년간 연락이 없었다. 어머니는 딸에게 앞으로는 같이 살자고 했다. 김 씨는 어머니를 따라 광주로 갔다. 정착금 500만 원은 어머니가 가져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잠적했다. 어머니는 휴대전화 요금 고지서도 최 씨 이름으로 돌려놓았다.
보육원 퇴소자들을 돕는 사회적 기업 ‘브라더스키퍼’의 김성민 대표(34)는 이런 부모들을 ‘정착금 사냥꾼’이라고 불렀다. 김 대표는 “보육원 퇴소자들에게 지급되는 정착금을 가로채는 사람들 중에는 부모가 제일 많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러하자 일부 보육원에서는 퇴소한 아이들에게 정착금이 지급되지 않았다고 부모들에게 둘러대기도 한다. 경북의 한 보육원 관계자는 “퇴소를 앞둔 아이의 아버지가 정착금에 대해 계속 물어봐 지급 사실을 숨긴 적이 있다”며 “이 아버지가 민원을 넣는 바람에 구청에 찾아가 설명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돌봤던 보육원장이 퇴소자들에게 정착금을 요구한 사례도 있다. 강모 씨(26)는 퇴소할 당시 보육원장으로부터 ‘후배들을 위해 정착금을 기부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원장은 오랫동안 보살핌을 받았으니 정착금을 보육원에 기부하라고 했다고 한다. 강 씨는 결국 정착금으로 받은 300만 원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복지부에 따르면 최근 4년간(2015∼2018년) 해마다 1000명 안팎의 청소년이 퇴소 연령에 이르러 보육원을 떠났다. 복지부에서는 이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4년에 한 번씩 설문조사를 하고 있다. 정착금 사용과 취업 여부, 소득 현황 등 보육원 퇴소 후 자립 실태에 대해 묻는 조사다. 하지만 실태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설문 응답자들 대부분이 퇴소 후 자립에 성공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최 씨처럼 당장 끼니도 해결하기 힘든 퇴소자들이 설문에 응하는 경우는 드물다. 보육원 퇴소자 자립 지원단체인 ‘선한울타리’ 최상규 대표는 “아이들이 어렵게 살아가는 이야기는 공무원들에게 거의 보고되지 않는다”며 “보육원을 퇴소한 아이들에 대한 실태조사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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