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발음 설명서인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 상주본의 현 소장자인 배익기 씨(56)는 지난해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렇게 말했다. 국가에 되돌려줄 뜻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주본은 내 것”이라는 배 씨 생각과 달리 대법원은 상주본의 소유권이 국가에 있다고 확정 판결했다.
사건은 11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경북 상주의 고서적 수집가 배 씨는 2008년 7월 “집수리를 위해 짐을 정리하던 중 발견했다”며 상주본을 처음 세상에 공개했다. 문화재청 전문가가 현장을 방문해 확인했더니 진품이었다. 일제의 한글 말살 정책으로 대부분 소실됐던 해례본의 등장은 한글 연구에서 중요한 발견이었다.
그러나 상주지역 골동품 판매상인 조용훈 씨가 “배 씨가 상주본을 내 가게에서 훔쳤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2011년 5월 대법원은 민사소송에서 “조 씨에게 소유권이 있다”며 조 씨 승소 확정 판결을 내렸다. 배 씨는 상주본을 내놓지 않았고, 조 씨는 수중에 없는 상주본을 국가에 기증하겠다고 밝힌 뒤 숨졌다.
이후 대법원은 2014년 5월 상주본을 훔친 혐의로 기소된 배 씨의 형사 사건에서 “뚜렷한 증거가 없다”며 무죄 확정 판결을 내렸다. 배 씨는 2017년 4월 “형사 사건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는데도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잘못됐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최근 상주본 소장자 배 씨가 “상주본 회수를 위한 강제 집행을 막아 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15일 확정했다. 재판부는 “형사 판결에서 무죄가 확정됐다는 사정만으로 고서의 소유권이 배 씨에게 있어 (강제 집행이) 배제되어야 한다고 볼 수 없다”는 2심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다만 상주본의 국가 환수가 바로 이뤄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현재 배 씨는 상주본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2015년 배 씨 집에 난 불로 책 아랫부분이 일부 훼손되는 등 보존 상태도 의문이다. 문화재청은 상주본 회수를 위한 강제 집행에 당장 나서지는 않고 배 씨를 설득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배 씨는 15일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상주본의 가치가) 1조 원이고 10분의 1 정도 되면 한 1000억 원 된다. (보상해주지 않으면) 그건 완전히 저는 억울하게 뺏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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