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 사는 A씨(50대·여)는 지난해 말 대전의 한 대학병원에서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고 10일 동안 온 가족이 힘겨운 날을 보냈다.
지난해 12월 다니던 직장에서 넘어져 코가 찢어지고 코뼈, 무릎 뼈 골절 등의 부상을 입은 A씨는 병원을 찾아 수술 준비를 하다 의사로부터 에이즈 양성이라는 청천 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
보건환경연구원에 정밀검사를 의뢰해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10일동안 A씨와 남편은 물론, 두 아들까지 지옥과 같은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부부사이의 신뢰도 깨졌다. 에이즈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 탓에 서로를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재활치료센터에 입원해 있던 A씨의 진료 차트에는 ‘피 감염주의’, ‘혈액주의’ 등이 명시돼 에이즈 확진자나 다름없었다. 이들 부부는 검사 결과 에이즈로 확진되면 “같이 죽자”는 각오까지 했다.
하지만 다행히 검사 결과는 양성이 아닌 음성이었다. 하지만 온 가정을 헤쳐놓은 상태는 쉽사리 복구되지 않았다. 가족 사이의 신뢰도, 일상적인 외출조차 부부가 바라보는 눈길도 예전 같지 않았다. A씨의 남편은 부상 치료차 찾은 병원이 화목했던 가정을 풍비박산 냈다는 사실에 화가 나 병원 앞에 플래카드를 내걸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은 에이즈 선별 검사의 ‘위양성(僞陽性:거짓 양성)’ 때문이다. 본래 음성이어야 할 검사 결과가 잘못돼 양성으로 나온 것을 말한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혈액 검사에서 1차로 거치는 에이즈 검사의 경우, 감염 의심이나 확진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민감도가 굉장히 높아 몸 상태나 복용중인 약에 따라 양성 판정이 나올 확률이 크다. 그러나 이중 실제 확진자는 불과 4%도 되지 않는다.
이렇다보니 의료계도 곤란하긴 마찬가지다. 후천성 면역 결핍증(AIDS) 예방법에 따르면 위양성의 경우 반드시 결과를 알려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혈액 검사 샘플이 부족하거나 다른 치료가 필요한 경우 사실을 알리고 주의 사항이나 정밀검사를 권고하도록 하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선별 검사에서 양성이 나올 경우 다시 검사한 후 필요하다면 환자에게 결과를 알려주고 자세히 안내하게 돼 있다”며 “그 과정에서 환자가 힘들다는 것은 알지만 확진인지 의심인지는 밝혀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검사의 위양성이 너무 높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위양성이 낮을 경우 오히려 위음성(僞陰性)이 높아져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위음성이 높을 경우 에이즈에 걸린 사실을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검사의 민감도를 낮출 경우 오히려 구멍이 생길 수 있고, 에이즈 환자에 대한 관리가 허술해 질 수 있다”며 “현행 법상 선별 검사 후 확진검사를 하게 돼 있으며, 위양성이 높아 유감스러운 일이 발생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별다른 방도가 없다”고 밝혔다.
에이즈 환자를 지원하는 에이즈연구소 관계자는 “병원에 내원하거나 헌혈 등으로 1차 양성 판정을 받은 분들이 상담전화를 걸어오는 경우가 실제 상당히 많다”며 “의심받은 환자가 힘들다는 것은 알지만 질병을 더 확실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에이즈는 성과 관련된 문란한 질병이라는 오명 등으로 사회적 인식이 나빠 ‘에이즈 포비아’에 시달리거나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며 “지금 에이즈는 당뇨나 고혈압 등과 같이 관리할 수 있는 만성 질환으로 생각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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