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층 주택과 오래된 상점들이 섞인 서울 성동구 용답동. 신축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선 성동구의 다른 지역과는 사뭇 다른 일반주택 밀집 지역에 ‘킹콩부대찌개 용답점(용답19길)’이 있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1+1 주민사랑 나눔 프로젝트’라고 적힌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 식당은 손님이 1인분을 먹고 2인분어치를 계산하면 남은 1인분은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나중에 먹을 수 있다. 이용을 원하는 사람은 식사 후 입간판 옆 에어컨에 부착된 쿠폰(1인분 8000원)을 떼서 계산대에 내면 된다. 기자가 식당을 찾았던 16일 기준 적립된 쿠폰은 59개로 금액으로는 47만2000원이다. 이 식당을 비롯해 용답동, 송정동에서 식당 미용실 슈퍼마켓 각각 2곳씩 총 6개 상점이 4월부터 1+1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인들에게는 생소한 이 프로젝트는 100여 년 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맡겨둔 커피’란 의미의 ‘서스펜디드 커피’ 캠페인과 비슷하다. 자신이 먹은 커피 값보다 많은 금액을 결제하면서 나머지는 어려운 이웃이 나중에 먹을 수 있게 한다. 국내에서는 2010년대 지방 소도시 몇몇 상점이 ‘한국형 서스펜디드 커피’ 또는 ‘미리내(돈을 미리 낸다는 의미) 운동’에 나섰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방식이 가지는 한계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기부자는 누구일지 모르는 사람을 위해 기부를 해야 한다. 금액이 소액이고 기부한 기록이 남는 것도 아니어서 소위 티가 나지 않는다.
이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한 사람은 정원오 성동구청장이다. 정 구청장은 “송파구 세 모녀 사건에서처럼 법적 제도가 놓치는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민간 영역에서 자발적인 나눔 문화가 활성화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후 용답동 주민자치회와 송정동 주민자치위원회 등이 나서 지역 상점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1+1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상점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수혜자들이 눈치 보지 않고 혜택을 받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국내 나눔 문화를 한 단계 성숙시킬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킹콩부대찌개 용답점 주인인 이희원 씨(55)는 1+1 프로젝트 전도사를 자청했다. 그는 단골손님이 올 때마다 프로젝트 의미를 설명하며 기부를 권유한다. 한 손님은 “난 세금도 많이 내는데 그 세금으로 도와주면 된다. 왜 이런 게 필요하냐”며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 이 씨의 거듭된 설득에 최근 5000원을 내놓았다. 1인분보다 적은 금액이라도 기부하면 가게에서 1인분을 모아 쿠폰을 발행한다. 이 씨 자신도 이미 20인분을 기부했다. 그는 “장애가 있는 자녀를 키우다 보니 서로 돕고 사는 게 절실하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했다”고 말했다.
누구나 쿠폰을 사용할 수 있어 형편이 어렵지 않은 사람이 쿠폰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이 씨는 “아직까지 악용된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이용이 저조해서 문제”라고 했다. 3개월여 동안 이 프로젝트를 통해 무료로 식사한 사람은 34명이다. 주로 홀로 사는 할머니들이 많았다. 쿠폰을 쓸 때마다 ‘정말 이렇게 먹어도 되느냐’며 미안함을 느낀다고 전했다. 아직까지 두 번 이상 이용한 사람은 없다.
김학규 용답동 주민자치회장(69)은 “수혜자들이 편한 분위기에서 나눔 프로젝트를 이용하고 비슷한 처지의 이웃에게 적극적으로 권하는 문화를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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