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요구에 ‘위장취업’ 하고 겸임교수로…누구를 위한 ‘강사법’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25일 17시 01분


대학에서 체육학 강사로 일했던 A 씨는 요즘 ‘위장취업’을 준비 중이다. 2학기 때 강의를 맡으려면 대학이 요구한 조건을 맞춰야 한다. 일부 대학들이 8월 강사법(개정 고등교육법) 시행을 앞두고 내놓은 고육지책 탓이다. 고용 부담으로 정식 채용이 어렵자 강사들에게 겸임교수 자리를 내세운 것이다. 겸임교수는 정식교원 채용, 임용기간 보장 같은 강사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강의료도 강사보다 적게 받는다. 이 때문에 일부 대학은 4대 보험이 보장되는 일자리 취직을 강의 배정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A 씨도 피트니스센터를 찾아 “최저임금만 줘도 좋으니 4대 보험만 해결하게 해달라”고 사정했고 결국 허드렛일을 도와주는 조건으로 취업했다. A 씨 주변의 강사들도 태권도장 같은 체육시설에서 잡무를 보거나 지인의 회사를 찾아다니며 ‘위장취업’에 애를 태우고 있다.

대학과 강사 모두 강사의 처우를 개선한다는 법 취지에 동의한다. 그러나 대학은 “11년째 등록금이 동결된 상황에서 부담이 너무 크다”고 호소한다. 2011년 강사법이 처음 개정됐다. 그러나 시행이 계속 유예되면서 상당수 대학은 이미 조금씩 강사 규모를 줄였다. 지방 사립대 강사였던 B 씨는 올 1학기에 강의를 맡지 못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지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회사에 취업했다. 그러자 2학기를 앞두고 여기저기 대학에서 겸임교수로 강의를 맡으라는 연락이 왔다. 그는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2과목 강의를 맡을 예정”이라고 했다. 뒤늦게 교육부가 강사와 겸임·초빙교수 현황을 조사하기 시작하자 다시 채용을 중단하는 대학도 있다. C 씨는 “갑자기 강사로 채용하겠다고 해서 취업했던 회사에서 그만뒀다. 하지만 방학 중 임금은 2주일치만 준다고 했다. 강사법 시행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강사법에 따라 대학은 강사를 공개임용해야 한다. 하지만 강사들은 공고가 말뿐인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한 강사에 따르면 서울 한 주요 대학은 내부적으로 학과에 ‘강사를 채용하는 만큼 정교수 정원을 줄인다’고 공지했다. 정교수가 그만두지 않는 한 강사 채용이 불가능한 셈이다. 일부 강사를 뽑아도 자기 대학 출신만 챙기는 관행도 여전하다. 교수들이 제자들에게 돌아가며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일부 강사들 사이에서는 “서류 넣어봐야 들러리”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 4년제 대학에 지원했던 강사 D 씨는 “블라인드 채용이라면서 면접 도중 ‘우리 학교와 어떤 관련성이 있느냐’는 질문을 두 번이나 받았다”고 했다. 또 다른 강사는 “늦은 밤 ‘서류 합격’ 문자를 보낸 뒤 다음 날 바로 면접에 오라는 경우가 있었다. 사전에 언질을 받은 후보자만 오게 하려는 편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들의 사정도 만만찮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강사들에게 방학 중 임금과 퇴직금, 건강보험료 등을 지급하려면 연간 2965억 원이 추가로 들어간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교육부는 방학 중 2주일치 임금 288억 원만 지원금으로 마련했다. 그러면서 “퇴직금 등은 2020년 예산에 반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방의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강사법으로 인한 등록금 인상도 못 하게 하고 지원금도 부족한데 ‘평가에 반영할 테니 알아서 하라’고 협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E대 관계자는 “대학은 강사들이 노조를 결성해 각종 복지 혜택이나 정년을 주장하는 등의 리스크가 많은 걸 두려워한다. 그러니 일단 강사 숫자를 줄이려는 것”이라고 했다. 서울 G대 교수는 “한 학기당 12학점 미만으로 수업을 맡아왔는데 강사를 줄이다보니 17학점까지 높아졌다”며 “교수가 학원 강사처럼 수업만 하면 학문 경쟁력은 누가 키우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예나기자 yena@donga.com
김수연기자 s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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