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보복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사실상의 보복조치라는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현직 판사가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 “목적 실현을 위한 도구로 활용됐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태규(52·사법연수원 28기)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전날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징용배상 판결을 살펴보기’란 글을 게재하고 이같이 주장했다.
김 부장판사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서 판결이 활용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면서 “판결이 사회 분쟁을 해결하는 중요 수단인 것은 맞지만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세상 분쟁은 당사자들의 협상, 정치적 타협, 외교적 협상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된다”고 말했다.
이어 “대법원은 보충적인 법원리 등으로 원칙을 무너뜨리는 해석을 했다는 생각”이라며 “원고들의 억울한 사정이 풀어졌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적용되는 법의 기본원리가 상당 부분 흔들리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2012년 최초 3심 판결로 법원은 감당하기 힘든 실수를 한 것일지 모른다. 파기환송 후 다시 대법원에 올라왔을 때 종전 판결을 그대로 수용하기 어려워 외교적 해법을 기대했을 수 있다”며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법원은 정권과 재판거래했다는 오명을 쓰고, 당시 사법부 수장이 구금되는 참담한 지경까지 흘렀는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또 김 부장판사는 “나라면 아마 최초 1·2심 판결(원고 패소)처럼 판단했을 것”이라며 “좀 더 솔직해지면 대부분 판사들이 대법원 판결이 없는 상태에서 판단하라고 하면 원고 청구 기각 판결을 했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이것은 판사들이 판단력이 부족해서도, 법리를 몰라서도, 원고 입장을 모르거나 일본을 두둔해서도 아니다”면서 “현존하는 법률과 법학의 일반적인 법리, 대법원과 각급 법원이 쌓아온 선례를 통해 보편적인 법의 잣대로 판단하면 그것이 맞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대법원 판결에 대해 소멸시효 문제를 지적했다. 민법 제766조(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손해배상 청구권은 피해자나 법정 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로 인해 소멸된다’고 규정한 것에 어긋난다는 취지다.
김 부장판사는 “대법원 판결이 있고 먼저 든 생각은 소멸시효의 벽을 어떻게 넘었을까 하는 것”이라며 “이 사건은 1945년께로 돌아가니 그 시점부터 따지면 소송이 최초 제기된 2005년까지 봐도 약 60년의 세월이 흘렀고, 일본과 국교가 회복된 1965년을 기준으로 봐도 40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언급했다.
이어 “이 사건 판결문을 찾아본 다음 느낀 소회는 역시 특별한 논리는 없다는 생각이었다”면서 “원고들이 소를 제기하자 새로운 인식이 부각돼 장애가 없어졌다는 논리는 도통 이해하기가 힘들고, 그것은 소멸시효 제도를 형해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해 10월30일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후 일본 정부가 지난 1일 반도체 관련 소재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하며 한국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사실상의 보복조치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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