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서울 양천구 목동 지하 배수터널에서 수몰 사고가 나 3명이 희생되기 직전 지상의 직원이 “대피하라”는 무전을 보냈지만 이동식 중계기를 치운 탓에 작업자들이 이를 듣지 못한 것으로 1일 확인됐다. 사망한 근로자 2명이 속한 건설사가 2년 전 안전수칙을 어겨 사망 사고를 냈던 전력도 드러났다.
서울소방재난본부는 목동 지하 배수터널에서 빗물에 휩쓸려 실종됐던 시공사(현대건설) 대리 안모 씨(29)와 하도급 업체(H건설) 직원 S 씨(23·미얀마인)가 1일 오전 5시 40분경 터널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전날 발견된 H건설 직원 구모 씨(65)까지 3명의 근로자가 모두 숨진 것이다.
경찰과 각 업체에 따르면 양천구는 사고 당일 오전 7시 31분경 현대건설 하도급 업체 소속 시운전자에게 “비가 더 오면 수문이 열릴 것 같다”고 전달했다. 이를 전해 들은 현대건설 측은 7시 10분경부터 터널 안에서 점검 작업 중이던 구 씨 등과 무전 교신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이 공사 현장 운영 안내서에 따르면 터널 안에서 작업할 때는 무선통신을 위한 이동식 중계기를 둬야 하지만 사고 당일엔 이를 치운 상태였다. 공사가 최근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이유로 매뉴얼을 어긴 것이다. 현대건설이 공사 발주처인 서울시도시개발본부에 제출한 ‘안전관리계획서’엔 폭우 등에 대비해 안전관계자가 무전기와 비상벨의 음질을 매일 점검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사고 당일 터널 안엔 비상벨이 없었다. 무전기도 작동하지 않았다.
현대건설 측은 7시 38분경 양천구에 “현장 제어실에 들어가 상황을 보겠다”고 알렸고, 7시 40분경 협력업체 직원 B 씨를 제어실로 들여보냈다. 하지만 B 씨는 수문 조작법을 몰랐다. 결국 비슷한 시간에 수문이 자동으로 열려 빗물이 터널로 쏟아지기 시작했지만 수문을 닫을 수 없었다. 안 씨는 이런 사실을 알고도 7시 50분경 구 씨 등을 구하러 터널에 진입했다. 경찰은 현대건설과 H건설이 사고 당일 작업을 시작하기 전 비가 예보됐는데도 작업자들을 터널에 들여보낸 것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해당하는지 조사 중이다. 이 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기상이 불안정하거나 터널 작업 중 물이 쏟아져 근로자가 위험해질 우려가 있으면 작업을 멈춰야 한다.
H건설이 공사에 참여한 과정에서도 문제점이 드러났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H건설은 2017년 5월 25일 경남 창원시 팔용터널 건설 공사 때 덤프트럭이 굴러 떨어지며 운전사가 숨지는 사고로 ‘중대재해’ 업체로 분류됐다. 당시 창원고용노동지청은 H건설과 현장소장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서울시는 2013년 7월 7명이 숨진 서울 동작구 노량진 배수지 수몰 사고 후 비슷한 사고의 재발을 막겠다며 2016년 6월 예규를 개정했다. 안전 관리를 소홀히 해 중대재해를 일으킨 업체는 5년간 서울시나 자치구가 발주하는 하도급 계약에서 배제하는 내용이다. 이 기준대로라면 H건설은 2022년 5월까지 서울시 발주 공사에서 배제됐어야 한다. 하지만 H건설은 지난해 3월 목동 배수터널 공사 계약을 따냈다. 서울시는 입찰업체의 사고 이력을 ‘건설정보관리시스템’으로 조회하는데 여기엔 서울 외 지역에서 발생한 사고가 기록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도 “H건설의 중대재해 이력을 알았다면 재계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대재해 업체 명단은 고용노동부에 요청만 해도 받을 수 있다.
숨진 근로자 3명의 유족들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안 씨의 외삼촌은 “조카는 지난해 결혼한 새신랑이었다”며 “원래 의협심이 강한 조카였지만 그렇게 위험한 상황에서 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구 씨는 6남매 중 장남으로 동생들을 부모처럼 돌보다가 정작 본인은 마흔이 넘어 가정을 꾸린 것으로 전해졌다. S 씨는 앞을 보지 못하는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2017년 5월 한국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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