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내가 폴폴 났다. 발바닥이 퉁퉁 부었다. 6시간 동안 단 한 번 앉았고 1만9000보를 걸었다. 발바닥이 뜨거워졌다.
하루종일 대리석 바닥을 걸어야만 이들의 업무가 끝난다.
A씨(30대)와 B씨(20대)는 인천국제공항공사 용역업체의 기동타격대원이다. 오전 6시30분부터 오후 8시30분까지, 다음날에는 오후 8시30분부터 날을 넘겨 오전 6시30분까지 2인 1조로 일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대표적인 ‘용역업체’에서 일하는 타격대원들의 일과를 따라가봤다.
◇화장실샤워 노숙인부터 테러물질 확인까지
이들은 오전 8시30분쯤 탈의실에서 나왔다. 2㎏정도 되는 검은 조끼를 입고 왼쪽 귀에 리시버를 꾹 눌러 끼웠다. 조끼 오른편엔 가스총이 왼편엔 무전기가 달려있다.
“공항은 도떼기 시장이라고 보시면 돼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죠. 그런 별 사람들이 만나는 최초의 교점이기도 하고요.”
하루에 10만명 이상이 입국하는 인천공항은 그야말로 ‘사람천국’이다. 설렘을 안고 출입국하는 관광객 뿐만 아니라 노숙자는 물론 정신이상자와 테러 용의자, 마약 운반책 등도 공항 곳곳에 숨어있다. 지하에 있는 노숙인인 일명 ‘노트북 할아버지’도 항상 이들이 걱정해야 하는 변수다.
오전 8시부터 11시까지 이들은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단 한번도 쉬지 않고 걸어다녔다. ‘방치’라고 주인없는 수하물을 찾으러 가기도, 폭탄처리반을 부르기도 한다. 방치는 이들이 쓰는 은어로 주인없는 캐리어나 박스를 의미한다. 또 속옷을 입지 않고 돌아다니는 정신이상자를 잡으러 계단 곳곳을 뛰어다닌다.
“용역이라는 것 자체가 노가다 파견업체 같은 거예요. 저희는 일종의 경찰업무를 하는 건데 순찰이랑 다른 건 온갖 궂은 일은 다 하는거죠.” 청원경찰을 쓰기엔 비용이 많이 들어 이들을 쓴다는 말이다.
10년 동안 하루에 10시간에서 12시간을 공항 곳곳을 걸어다녔다. 의자에 앉아 쉴법도 한데 왜 쉬지 않냐 물으니 A씨는 ‘그러면 제재당한다’고 말했다. 발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발목이 비뚤어져있었다. 그는 발가락 근육에 염증이 생기는 족저근막염에 걸려 산재를 신청하기도 했다.
샤워실 옆에서 외국인에게 동냥을 하는 아주머니가 이들을 풀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가 갑자기 먹고 있던 감자를 이들에게 집어던지려고 했다. 왜 제재를 직접 하지 않냐는 질문에 이들은 “우리는 경찰이 아니니까요”라고 했다. 조끼도 사실 방탄조끼가 아니라고 한다. 입고있는 검은 조끼는 방탄조끼처럼 생겼지만 사실상 아무런 역할을 못한다. 또 경찰이 아니라서 확실한 위법행위를 한 것이 확인되지 않는 이상 제재를 할 수가 없다.
“창고나 계단에 가보면 갑자기 칼로 위협하는 사람도 봤어요. 겉으로는 저희가 특공대원처럼 보이는데 사실 몸으로 위험들을 막는거죠. 조끼도 칼을 막지 못하고요. 독극물질 같은 것도 뭐…”
2층 남자 장애인화장실 공조함에서는 수상한 비닐이 발견됐다. 변기 옆 배관통을 열어보니 거짓말처럼 면세봉투가 구석에서 쏟아졌다. 면세봉투 안에는 홍삼약통과 빈 주사기가 들어있었다.
“워낙 힘들어서 한달에 10명도 더 나가요. 보통 하루에 25㎞걷는다고 보시면 돼요. 공무원 별정직들은 같은 업무를 해도 우리처럼 계속 서있지는 않아요.”
“무엇보다 눈치보는 게 제일 힘들죠. 근무 중에 앉을 수도 없고… 저희는 매일 비행기를 보지만 휴가도 거의 못 써요. 자회사로 바뀐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여전히 차별받는다고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일을 하냐는 질문에 이들은 이렇게 답했다.
“이미 40줄 가까이 먹어서 다른 곳에 취업할 곳이 없어요.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데 일단은 3년까지는 버틸 수 있잖아요. 3년은 저희가 용역회사와 계약하는 기간이에요. 그래도… 뿌듯할 때도 많아요. 테러 물질도 저희가 제일 먼저 찾아내니까요.”
때마침 흰색 스티로폼 상자 ‘방치’를 발견해 뛰어갔다. 다행히 폭탄 같은 위험물건은 발견되지 않았다.
◇갑을병 중에 병인 용역업체… 자회사로 편입돼도 여전한 차별
용역업체 직원은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 포함된다. 문제는 이들이 용역업체 직원이라 원청업체에 임금이나 고용조건 등을 직접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원청이 갑이라면 용역회사는 을이며 용역업체 직원은 병이 되는 셈이다. 용역업체 직원은 원청과 용역업체의 계약 갱신에 의해 2~3년에 한 번씩 계약을 다시해야 하고 임금도 원청이 용역에게 주는데 ‘낙찰률’로 깎여 지급받는다.
예를 들어 직원이 2명인 용역회사가 있다면 원청회사가 최저임금에 맞춰 용역회사에게 400만원을 지급하면 용역회사는 직원 2명에게 낙찰률을 적용해 370만원 정도의 임금을 지급한다. 각각 경력 별로 200만원, 170만원을 나눠가질 경우 170만원은 최저임금 위반이기 때문에 용역회사는 200만원을 받는 직원의 임금에서 10만원 정도를 떼서 지급한다. 여기서 하향평준화가 발생한다.
또 용역업체는 원청과 계약을 갱신해야 하며 이로 인해 용역업체가 바뀌는 상황도 매번 벌어진다. 용역업체가 바뀐다는 것은 을과 병의 관계가 빠르면 1년, 느리면 3년에 한 번씩 재정립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노동자가 신입사원으로 다시 용역업체에 고용되야 하기 때문에 연차를 인정받지 못하고, 또 해고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떨어야 한다.
위험의 외주화 문제도 얽혀있다. 용역업체는 대부분 청소, 경비, 시설관리 등 현장 노동자들이 많다. 비사무업종이기 때문에 외부의 위협에 노출돼 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에는 충남 태안에서 하청업체 비정규직이었던 김용균씨(24)가 목숨을 잃었다. 이듬해 2월에는 충남 당진에서 외주업체 비정규직인 50대 남성이 컨베이어 벨트에 끼인 채 사망했다.
정부는 현재 공공부문 비정규직 중 파견용역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거나 자회사고용으로 바꾸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현재 공공부문 파견용역 노동자들은 7월 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총 656개의 기관에서 17만명 정도가 일을 하고 있다. 정부는 이들 중 11만3000명을 자회사나 직접고용으로 전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중 3만명 정도가 이미 자회사로 전환됐다.
그러나 하청용역업체 노동자들은 자회사로 전환돼도 ‘공공용역업체’에 또 다시 종속되는 것일 뿐, 차별이 개선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정부에서는 ‘수의계약’을 통해 자회사가 안정적으로 이들을 고용해서 정규직의 신분(무기계약직)으로 바뀐다고 반박한다.
김동인 학교비정규직노조 법규부장은 “수의계약을 하더라도 원청업체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계약이 해지되면 끝나는 셈”이라며 여전히 고용불안전성이 남아있다고 설명한다.
이로 인해 곳곳에서 마찰을 빚고 있다. 특히 7월3일에는 사상 처음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 10만여명이 정규직 전환 등을 주장하며 전국 규모로 파업했다. 한국도로공사 용역회사 직원인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 1500여명은 지난 30일부터 톨게이트 천장에서 농성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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