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농부들’ 9374명 구슬땀
3대째 농사 가업 이은 한태일씨… 채소 모종-국화 화분 年5억 매출
작년 쌀 1800가마 생산 박병삼씨… 우렁이 농법으로 친환경 마크
30년 넘게 배 키우는 박성창씨… 한해 5만개 농협 넘기거나 직판
4일 서울 서초구 원지동의 한 비닐하우스.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에서 불과 1km 정도 떨어졌지만 여느 농촌과 다름없이 비닐하우스로 빼곡했다. ‘서울 농부’ 한태일 씨(45)는 비닐하우스 24개 동을 운영하며 오이, 상추 등 60여 가지 채소의 모종 등을 재배하고 있다. 지난해 채소 모종 300만 개, 국화 화분 4만5000개를 출하해 매출 4억∼5억 원을 올렸다. 한 씨는 “소비지와 가까워 보다 신선한 농작물을 공급할 수 있고 유통비용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씨의 밭은 양재동 화훼공판장과 경기 과천시 남서울화훼단지와도 가깝다.
그는 농사를 짓기 전에는 2년간 벤처기업에서 게임개발 업무를 담당했다. 대학에선 경영학을 전공했다. 신생 기업에서 신입사원이 해야 할 일은 많았고 급여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과중한 업무에 싫증을 느낄 즈음 그는 농업을 떠올렸다. 그의 할아버지는 벼농사를 지었고 아버지도 이곳에서 채소 모종을 키웠다. 그는 퇴사한 뒤 2002년 가업을 이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서울의 농지 면적은 1084ha로 농부는 9374명이다. 이들 중에는 대를 이어 농사를 짓는 사람도 많다. 다만 지역에 따라 생산하는 주요 농작물은 다르다. 강동구 송파구 등 동부지역에선 채소를, 강남구 서초구 등 남부지역에선 꽃, 나무 등을 키운다. 강서구 등 서부지역과 중랑구 노원구 등 북부지역은 각각 쌀과 배를 주로 생산한다. ‘경복궁쌀’과 ‘수라배’라는 지역 브랜드도 따로 있다. 한 씨는 “농업 인구는 고령화되고 있으나 새로 진입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 인구는 많지 않아 경쟁력 확보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42년 동안 강서구 오곡동에서 벼농사를 지은 박병삼 씨(65)는 지난해 80kg짜리 쌀 1800여 가마를 생산한 ‘이천석꾼’이다. 농지만 16만5000m²가 넘는다. 3년 전부터 서울시 농업기술센터로부터 제초용 우렁이를 지원받아 친환경 ‘우렁이 농법’을 일부 도입했다. 우렁이는 논의 잡초를 없앤다. 우렁이 농법으로 생산된 ‘경복궁쌀’에는 친환경 마크까지 붙었다. 이 덕분에 지난해에는 반품된 쌀이 없을 정도로 품질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다만 친환경 농법에는 비용이 더 들어간다. 박 씨는 “최근 폭우가 내려 농작물에 다소 피해가 발생했다. 아직까지는 괜찮은데 폭염 등으로 올해 풍년은 장담할 수 없다. 앞으로 남은 2개월 동안이 고비”라고 말했다.
중랑구 신내동 토박이 박성창 씨(55)는 군 복무를 마친 뒤 30여 년 동안 배 농사를 짓고 있다. 연간 5만 개가 넘는 배를 생산해 농업협동조합에 넘긴다. 일부 수확물은 밭 옆에 마련된 간이판매대에서 판매한다. 박 씨는 “유통 단계가 적어 지방 농가에 비해 수익률은 높은 편”이라면서도 “서울은 전형적인 농업 지역이 아니라서 지원금이 적은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가까운 경기도 등에선 농기계 등에 농업 지원금을 주는데, 서울에선 이런 혜택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박 씨는 농업이 직접 땀을 흘리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천직이라 자신의 두 아들에게 적극 권하고 있다고 전했다.
강동구 고덕동에서 상추, 치커리 등 쌈 채소를 전문으로 재배하는 최재일 씨(44)는 오전에 밭으로 출근하고 퇴근할 때 종종 복합상영관에 들러 영화를 감상한다. 그는 “농사를 지으면서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게 서울 농부의 가장 큰 장점”이라며 “농지가 비교적 많던 강동구에도 아파트 건설로 농지가 줄어들고 있다. 새로 땅을 매입하기도 어려워 생계 터전이 없어질까 봐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