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톡스 전직원의 고백 “내가 엘러간 보톡스 기시법 베꼈다”

  • 뉴스1
  • 입력 2019년 8월 5일 06시 31분


“어느날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다른 회사의 보톡스 기준 및 시험방법 자료를 모두 베껴 식약청에 제출했다.”

국내 보툴리눔톡신시장 1위 ‘메디톡신’이 세상에 나오기 전인 2001년, 당시 메디톡스 직원이었던 A씨가 털어놓은 고백이다. 품목허가를 받기 위해선 식품의약품안전처(당시 식약청)에 기준 및 시험방법(기시법)을 제출해 승인받아야 하는데 엘러간사의 ‘보톡스’ 기시법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제출했다는 얘기다.

메디톡스가 수년이 걸릴 수 있는 기시법 작성을 단 1~2달 만에 해내고, 테스트 과정을 포함해 최종 완성하기까지 7개월여밖에 걸리지 않은 ‘비법’이 바로 ‘베끼기’였다는게 A씨의 증언이다.

약사법상 이를 규제할 수 있는 기업 대상의 규정은 없다. 그러나 기업 윤리 문제와 기업간 영업비밀 침해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A씨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익신고서를 대리 변호사를 통해 국민권익위원회에 제출했다.

기시법은 의약품 제조 기업이 품질관리를 위해 직접 만드는 기준이다. 제품의 품목허가를 받기 위해선 이 기시법을 식약처로부터 미리 승인받아야 한다. 제조된 의약품이 그 품질 기준에 적합한 지를 확인하는 용도로, 기시법은 과학적 근거로 설정한 항목별 시험법과 허용범위 등이 담겨있다.

A씨는 최근 <뉴스1>과 인터뷰를 통해 “당시 메디톡스에는 기시법을 아는 직원이 아무도 없었고 어떤 자료에도 공개된 게 없어 막막한 상황이었다”면서 “2001년 초 누군가 구해온 보톡스 기시법이 내 책상 위에 있었고, 이를 베껴 자체 기시법을 완성한 뒤 7개월여 만에그 해 여름 식약청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현재는 보툴리눔톡신제제 기시법이 고시돼 있어 쉽게 참고할 수 있지만, 당시엔 그런 기준자료가 없었다”며 “그렇게 제출한 ‘메디톡신’ 기시법이 당해 9월쯤 승인이 났고, 이를 시작으로 2003년 임상을 거쳐 3년 뒤 품목허가까지 받게 됐다”고 덧붙였다.

A씨의 구체적 증언에 따르면, 해당 ‘보톡스’ 자료는 목차와 기원, 개발경위, 기시법 등 원문을 담고 있었다. 그 자료 뒷장 내용들은 모두 사선으로 기밀유지와 같은 표식이 있었다. 사실상 기시법을 베끼기 위해 마련된 자료였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A씨는 “보톡스 기시법을 그대로 옮기면서 현실에 맞게 실험쥐만 기존 스위스종에서 한국종으로 바꿨다”면서 “숫자를 포함해 완전히 베낀 것이 티가 날 것 같아, 맨 마지막 항목만 유럽 약전에 있는 다른 보툴리눔톡신 ‘디스포트’ 내용을 첨부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메디톡신측은 ‘보톡스’ 기시법을 어떻게 확보했을까. 복수 관계자들에 따르면 2001년 초에는 메디톡스가 선문대학교 실험실에서 정현호 대표와 임원 1명, 연구원 1명, 대학원생 2명 등 소수의 임직원이 기초연구를 하던 때다.

자료 제공 가능자는 범위가 넓어 특정하기 어렵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물론 엘러간이나 1998년부터 10년간 ‘보톡스’의 국내 품목허가권자였던 대웅제약도 자료는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기업이 경쟁사에게 이 자료를 건내줬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대신 엘러간 혹은 대웅제약에서 근무한 뒤 퇴사한 직원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당시 업계 분위기에 따라 다른 의혹도 제기된다. 제약업계 오랜 경험을 가진 한 관계자는 “2000년 초반은 기업이 기시법을 얻기 위해 전문 브로커에게 20만~30만원을 주고 요청하면 식약청이나 다른 곳으로부터 그 자료를 빼올 수 있는 경우가 많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그 땐 어떤 형태로든 기시법 장사가 흔하던 때”라고 덧붙였다.

만약 자료 제공자가 식약청쪽이었다면, 식약청은 2001년 1월 12일 신설된 약사법 88조(제출자료의 보호)를 위반이다. 특정 업체가 상대방 기업의 동의없이 그 자료를 편취한 것이라면 다른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사실 이 법 조항이 있든 없든, 기업이 허가를 위해 제출한 자료를 제3자에게 제공하는 것은 권리 침해라 해서는 안 되는 행위”라면서 “만약 특정 업체들 간의 문제라면 지적재산권 침해 여부 등을 따져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맥락으로 국내 한 대형 로펌의 변호사는 “업체간 문제면 공개되지 않은 자료는 이를 가진 회사의 영업비밀일 수 있어 업체간 영업비밀 침해 사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변리사도 “영업비밀 침해 요소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A씨는 “메디톡스는 마치 다른 곳들에 기술과 균주를 도둑 맞은 것처럼 얘기하고 있지만, 메디톡스야말로 다른 회사의 영업기밀을 훔쳐 지금의 회사를 만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공익신고한 내용들대로 과거의 이러한 과정에서 제대로 된 연구개발이 없었기 때문에 허가 후 제품 생산에 있어 불량품이 나올 수 밖에 없었고, 이를 덮기 위해 지속적으로 더 큰 불법행위들을 저질렀다”면서 “과거에 저지른 과오를 이제야라도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제보자는 대웅제약과 결탁해 여러 언론사와 기관에 제보하고 있는 동일인으로서 제보 내용 자체에 신뢰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한편 A씨는 이번 공익신고서를 통해 부적합한 시설에서 제조한 연구용 원액을 판매제품에 사용한 문제와 역가 시험자료 조작 문제 그리고 멸균처리가 제대로 안 된 ‘메디톡신’ 유통시켰거나 과거 불량 제품의 제조번호를 이후 생산된 정상제품에 변경 사용한 문제 또 ‘메디톡신’을 품목허가 받기 전 유통했거나 품목 후 국가검정을 받지 않은 제품을 유통한 문제 등 다수의 의혹을 제기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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