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인 A 양은 1년간 사귀다가 헤어진 옛 남자친구 김모 씨(20)로부터 끔찍한 일을 당했다. 지난달 13일 새벽이었다. A 양은 서울 양천구의 한 길가에서 헤어진 지 두 달 된 김 씨와 우연히 마주쳤다. 김 씨는 “얘기나 좀 하자”며 인근 편의점의 야외 테이블로 A 양을 이끌었다. 그런데 김 씨가 갑자기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A 양의 휴대전화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휴대전화 액정이 부서졌다. A 양의 휴대전화에서 다른 남성과 주고받은 메시지를 본 것이다. 김 씨는 “다시 사귀자”며 1시간 넘게 매달렸다. A 양은 거절했다. 그러자 김 씨는 A 양의 휴대전화를 바닥에 세게 내던진 뒤 발로 밟아버렸다.
이날 A 양은 겁에 질린 채 김 씨의 손에 끌려 다녔다. 김 씨는 A 양을 서울 강서구의 한 모텔로 끌고 갔다. 김 씨는 “헤어지긴 했지만 오늘 하루만 같이 있자”고 했다. 그리고 A 양을 성폭행했다. 이날 이후 A 양은 김 씨가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지난달 21일 밤늦은 시간. A 양이 걱정했던 일이 벌어졌다. 귀가 중이던 A 양은 집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에서 김 씨와 마주쳤다. 김 씨는 A 양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 씨는 바지 주머니에서 흉기를 꺼내 A 양에게 들이댔다. “죽이지는 않고 찌르기만 하겠다”는 등의 말을 하며 10분 넘게 위협했다. A 양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김 씨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과 특수협박 등의 혐의로 지난달 25일 구속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A 양처럼 데이트폭력에 시달리던 피해자의 신고가 늘고 있다. 2016년 9364건이던 데이트폭력 신고 건수가 2017년 1만4163건, 지난해엔 1만8671건으로 증가했다. 2년 사이 약 2배로 증가한 것이다. 경찰 신고뿐 아니라 전문기관에 상담을 요청하는 사례도 크게 늘었다. 여성긴급전화 1366에 걸려온 데이트폭력 피해 상담 건수를 보면 2016년 4138건, 2017년 8291건, 2018년 1만3289건으로 3배로 증가했다.
6일 경기 용인시에서는 데이트폭력으로 20대 여성이 목숨을 잃는 사건도 있었다. 이날 오후 10시 반경 용인시 기흥구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는 B 씨(27)가 과거 연인 사이였던 안모 씨(29)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경찰 조사결과 안 씨는 B 씨가 자신을 계속 피하자 B 씨의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범행을 저질렀다. B 씨는 “전 남자친구가 또 찾아왔다. 경찰에 신고해달라”는 메시지를 친구에게 남겼지만 도움을 얻지 못했다.
조재연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국장은 “데이트폭력 피해 상담 사례를 보면 살인 등의 강력범죄가 일어나기 전 가해자가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따라다니거나 괴롭히는 스토킹 행위가 있는 경우가 많다”며 “스토킹을 강력하게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어 여성들의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스토킹 범죄는 경범죄처벌법 위반에 해당한다. 경범죄처벌법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해 만남이나 교제를 요구하는 행위, 반복적으로 따라다니거나 잠복해 기다리는 행위’ 등을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보고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처벌 수위가 1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과료에 불과하다. 스토킹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은 1999년 처음 발의된 후 20년이 지났지만 아직 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20대 국회에 계류 중인 스토킹 범죄 처벌 관련 법안만 7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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