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당시 지휘·감독을 소홀히 한 혐의로 기소된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해 항소심에서 원심 판결을 뒤집고 유죄로 판단한 이유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이균용)는 9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구 전 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구 전 청장은 2015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 시위 현장 총괄 책임자로서 경찰이 백남기 농민 머리 부분에 직사 살수를 하는 상황을 인식하고도 이를 방치한 혐의로 기소됐다. 백씨는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갔으나 결국 2016년 9월25일 사망했다.
1심은 현장에서 떨어진 서울지방경찰청 상황지휘센터에서 방송 화면과 무전 등을 통해 현장을 파악하고 총괄하던 구 전 청장이 백씨를 사망에 이르게 한 과잉 살수 상황을 구체적으로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또 구 전 청장이 총괄책임자로 살수차 운영지침에 허가권자로 명시돼 있지만 그 권한을 현장 지휘관 등에 위임하고 있고, 이 때문에 결국 일반적인 지휘 감독 의무가 있을 뿐 원칙적으로 구체적인 의무를 부담하기도 어렵다고 봤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을 수긍하기 어렵다고 봤다. 당시 상황을 종합해 볼 때 구 전 천장은 현장 지휘관이 안전한 살수에 대한 지휘·감독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당시 상황실에서 백씨에 대한 직사 살수가 있었던 종로구청 입구 사거리 상황이 실시간으로 전달됐다고 봤다. 해당 방향을 줌업(zoom up)한 교통 폐쇄회로(CC)TV 화면이 대형 스크린에 보이고 있었고, 여러 종합편성채널 생방송을 통해 현장 상황이 실시간으로 방영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방송 화면에는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살수 이전에도 시민이 머리 부위에 직사 살수를 맞고 넘어지는 모습이나 뉴스 속보로 시위 현장에 구급차가 투입된 상황이 담겼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구 전 청장이 시위 현장에서 과잉 살수가 방치되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구 전 청장이 이러한 상황을 인지한 이상 현장 지휘관의 보고를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거나 그 현장의 지휘만을 신뢰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휘권을 적절히 행사해 과잉 살수 방치 실태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파악하고 필요한 조치를 해야 했다고 봤다.
하지만 구 전 청장은 무전을 통해 실시간으로 개입이 가능한 구조였음에도 현장 지휘관에게 과잉 살수가 방치되고 있다는 점을 경고하거나 살수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참모를 통해 현장 지휘관에게 반복적으로 살수를 지시했을 뿐이었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재판부는 “경찰이 사용하는 위해성 경찰장비(살수차)에 의해 집회·시위 참가자들의 생명·신체의 위험이 초래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경찰관들이 시위대의 안전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서 과잉살수가 방치돼 피해자는 결국 생명을 잃었다”고 밝혔다.
이어 “만약 구 전 청장이 과잉 살수를 인지한 뒤 적절한 조치를 취했더라면 현장 지휘관과 살수 요원, 당시 현장 참모들까지 안전한 살수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고, 다른 양상으로 상황이 전개돼 백씨의 사망이란 무거운 결과를 회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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