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죽인 살인범이 필리핀에서 호의호식하면서 지낸다더라고요. 빨리 한국으로 송환해서 처벌받게 하고 싶은데, 진행상황을 알 수 없으니 정말 답답합니다.”
2016년 10월 필리핀 팜팡가주의 사탕수수밭에서 한국인 남녀 3명이 머리에 총상을 입고 잔혹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살인은 박모씨(41)가 주도하고 그가 끌어들인 김모씨(37)가 거들었다. 피해자들로부터 투자금을 받아 현지 호텔 카지노에 투자한 박씨가 돈 문제로 갈등이 생기자 이들을 모두 죽이고 투자금을 가로챌 목적으로 살인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김씨는 한국에서 붙잡혀 징역 30년형을 확정받고 복역 중이지만 주범인 박씨는 필리핀에 체류하고 있다.
법무부는 박씨가 현지 이민국 수용소에 구금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필리핀 교민사회 등에 따르면 박씨는 수용시설 관계자를 매수해 반자유의 생활을 누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 이후 현지에서 최초 체포된 이후 한 차례 탈옥했다가 붙잡히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피해자의 유족은 주범 박씨의 송환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유족은 박씨가 징역 30년을 선고받은 공범 김씨보다 현지 법원에서 적은 형을 선고받거나, 형이 확정되더라도 지금처럼 교정시설 관계자를 매수해 현지에서 자유롭게 지내게 될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박씨를 한국으로 송환하지 않으면 제대로 죗값을 묻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박씨는 현지에서 살인과 불법무기(총기)소지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기는 했지만 사건 발생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아직 현지 지방법원에서 1심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유족은 박씨가 국내로 송환되기는커녕 3년이 되도록 1심 결론조차 나지 않은 상황에 속을 태우고 있다. 현지 상황을 알 수 있는 창구는 법무부인데, 유족은 법무부가 유족의 애타는 심정에 비해 적극적으로 나서주지 않는다는 서운함도 드러냈다.
피해자 유족 A씨(26)는 “아버지를 죽인 박씨가 현지에서 너무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마음이 좋지 않았다”며 “법무부에 현지 재판 진행 상황 등을 문의해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거나 ‘송환을 재촉하고 있다’는 말만 하는 게 가장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A씨는 “어머니는 이후 우울증에 시달리고, 아버지가 생계를 책임지셨기 때문에 가세도 많이 기운 상황”이라며 “그나마 예전에는 공범 김씨의 재판도 다 참석했었는데 지금은 군대에 있어 더욱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한숨을 쉬었다.
다른 피해자의 유족은 너무 연로해서 몸이 쇠약하거나 우울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어, 박씨 송환과 관련된 일은 A씨가 유족 대표로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A씨는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이라면 애초에 단념했을 텐데 법무부에서는 ‘4~5년은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만 설명을 하고 있다”며 “그외 자세한 내용은 유족 신분에서 질의를 해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니 속이 탄다”고 말했다.
◇법무부 “작년 4월 송환 관련 실무협의 진행…계속 노력 중”
이에 대해 법무부는 필리핀 사법당국에 최대한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해 달라고 요청하는 한편 범죄인 인도 청구를 위해 실무 협의를 진행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법무부는 지난해 4월에는 필리핀 현지에 실무진을 파견해 범죄인 인도 청구 관련 실무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현지 수사기관 등 사법당국이 현지 절차에 따라 박씨를 재판에 넘긴 상황에서 무작정 송환을 요구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원칙적으로는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박씨는 범죄인 인도 청구 대상이 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사건 직후 박씨에 대해 추방명령이 내려지기는 했었지만, 살인의 죄질이 중해 현지 사법당국이 직접 기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유족의 답답한 심정을 이해하지만 각국의 사법 주권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유족의 입장을 고려해서 엄정하고 신속하게 재판해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재판이 끝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1심을 어서 진행해 달라고 독촉하고 있고, 탈옥 우려도 얘기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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