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이상저온 현상이 전국의 사과 등 과수 농가를 덮쳤다. 제대로 자라지도 못한 채 떨어진 사과를 보며 농민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끝이 아니었다. 7, 8월 최악의 폭염이 이어졌다. 전북도내 사과 전체 재배 면적(2217ha)의 61.6%인 1366ha가 피해를 봤다.
전북 김제시에서 10여 년째 사과를 키워온 베테랑인 김동권 산지뜸농원 대표(42)도 당연히 수확량이 급감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받아든 성적표는 달랐다. 수입은 전년과 같았고 오히려 사과의 품질은 높아졌다. 김 대표는 “2017년 과수원에 도입한 스마트팜이 효자 노릇을 했다”며 “스마트팜을 하지 않았다면 농사를 접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 온실 아닌 노지에서도 스마트팜이 효자
이미 시설하우스에는 스마트팜이 많이 도입됐지만 과수 농가에선 여전히 스마트팜이 낯설다. 재배 환경을 통제하기 쉬운 시설재배와 달리 외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노지(露地) 재배에서는 정보통신기술(ICT)의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인식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스마트팜을 활용하면 과수 재배에서 가장 중요한 수분 관리에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농식품 ICT 융복합 확산 사업’을 통해 스마트팜과 인연을 맺었다. 매일 작성해 온 영농일지를 통해 김제 지역에서 봄철 강수량이 점점 줄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이 많아지면서 꽃이 피는 초기 생육기에 사과나무가 큰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았다. 체계적인 수분 관리를 통해 사과의 생육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스마트팜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스마트팜에 필요한 센서 등을 설치하는 시공업체들이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노지 설치를 기피했다. 다행히 담당 공무원이 가까스로 건실한 국내 업체를 소개해줬다. 2017년 토양수분 센서(수분 관리), 외부환경측정 센서(생육환경 관리), 온도 및 습도 센서(저온저장고 관리) 등 3가지 기술을 농장에 적용해 본격적으로 스마트팜을 시작했다.
각각의 센서를 통한 측정값은 스마트폰으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김 대표는 “농장에 가지 않고도 시스템에 접속해 모니터링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 스프링클러를 원격으로 가동해 수분을 공급한다”고 말했다. 저온저장고 관리도 잘돼 수확한 사과의 보관 상태도 개선됐다.
특히 장기간 비가 오지 않을 때 스마트팜이 효자 노릇을 했다. 토양수분 센서로 측정한 토양 수분율과 온도를 고려해 제때 물을 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사과 재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수분 조절”이라며 “수분이 충분해야 과일의 당도도 높아지고 병충해에도 강해진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스마트팜을 시작한 첫해 수확량이 15% 늘었다. 사과 품질도 한 단계씩 높아졌다. 하품은 중품이 됐고, 중품은 상품, 상품은 특상품이 됐다. 수확량이 늘고 품질이 높아지면서 소득이 껑충 뛰었다. 스마트팜 설치를 위해 들어간 수천만 원의 비용을 첫해에 회수했다.
○ 위기를 기회로 바꿔준 스마트팜
김 대표는 2004년 사과 재배에 뛰어들었다. 전북대에서 생물공학과 원예학을 복수 전공한 그는 졸업과 동시에 아버지의 사과 농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녹록지 않은 농사일이었지만 알알이 익어가는 사과를 보며 견뎠다. 벤처농업대학을 졸업하는 등 품질이 좋은 사과 생산을 위해 연구도 멈추지 않았다.
농산물의 불합리한 유통 과정을 목도하고 직거래의 필요성에도 눈을 떴다. 온라인 장터를 적극 활용하고,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공공기관과 대기업의 사내 판매도 했다.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수확한 사과 전량을 직거래로 ‘완판’하자 부모님도 김 대표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농사를 하면서 숱한 시련도 겪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오랜 기간 방치됐던 농장을 일구며 굵은 땀방울을 흘렸지만 2012년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볼라벤은 큰 좌절감을 안겨줬다. 2016년에는 그가 몰던 1t 트럭이 신호를 위반한 35t 화물차와 충돌하면서 반년 넘게 병원 신세까지 져야 했다.
퇴원 후에도 병원과 집을 오가며 치료를 받느라 과수원을 비울 일이 많았던 김 대표에게 스마트팜은 농사를 계속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삶의 질도 높아졌다. 영농철 수분 공급을 위해 과수원에 틀어박혀 있던 과거와 달리 여행도 다닐 수 있게 됐다. 딸과 놀아줄 여유도 생겼다. 스마트폰과 인터넷만 되면 어디에서든 농장 관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스마트팜이 아니었다면 교통사고로 몸도 많이 안 좋아져 사과 농사를 포기했을 수도 있었다”며 “스마트팜은 위기에서 나를 구해준 고마운 선물”이라고 말했다.
망설이는 다른 농부들에게도 스마트팜을 적극 추천했다. 김 대표는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고 운용이 어려울 것이라고 막연히 두려워하는 농민들이 많다”며 “앞으로는 스마트팜을 하지 않으면 농업에서 도태될 것이다. 이제 스마트팜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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