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를 하기 위해 마약을 구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경찰이 마약 은어를 사용하는 등 위법한 함정수사로 이를 구매한 것이기 때문에 기소가 적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조용현)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대마) 혐의로 기소된 A(26)씨 항소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1심과 달리 무죄를 선고했다고 31일 밝혔다.
재판부는 A씨의 ‘위법한 함정수사에 의해 대마를 구입한 것이므로 공소는 무효다’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일반적으로 이런 형태로 마약 수사를 진행할 때, 유인자로 나서는 사람은 수사관이 아닌 정보원이나 마약 수사 공적을 노리는 사람이다”며 “이같은 수사방식은 엄격한 제한 하에서 허용된다”고 함정수사의 허용 범위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이 사건은 수사관이 직접 유인자로 나섰고, 대화 과정에서 A씨가 마약류를 전혀 소지하지 않았으며 투약 혐의도 발견할 수 없고, 나아가 마약 판매상으로 의심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면서 “혐의가 없다는 게 확인됐으면 거기서 수사를 멈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수사관이 A씨를 상대로 성관계를 해주겠다고 유혹해 대마를 구입할 의사를 갖게 하고, 나아가 실행까지 하게 한 행위는 정당한 직무집행을 벗어난 위법”이라며 “이 사건 범행은 A씨 의사에 과도하게 개입한 것으로 위법한 함정수사에 해당한다”고 기소가 적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마약 은어인 한글 자음 ‘ㅅ’을 잘못 이해한 사정도 고려했다. ㅅ은 마약사범들 사이에서 필로폰을 뜻하는 은어라고 한다.
재판부는 “A씨가 대화방의 ‘ㅅ하자’는 대화명을 보고 성관계하자는 것으로 생각했고, 대화 중에 마약이라는 것을 짐작해 성관계 욕심에 거짓말하고 대화했다”며 “일반인들에 있어서는 ㅅ이 필로폰을 지칭하는 것으로 알기 어렵고 성관계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A씨는 지난해 2월5일 서울 관악구에 있는 주거지에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대마 약 1.35g을 구입해 퀵서비스로 건네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사 결과 당시 마약 수사 중이던 경찰 수사관 B씨는 모바일 채팅 애플리케이션에 여성으로 등록한 후 ‘ㅅ하자’는 제목의 대화방을 개설했다. 대화방에 접속한 A씨는 실제 마약이 없었음에도 “갖고 있다”고 한 뒤 대화를 이어갔다.
B씨는 마약 사진을 보여달라며 요구했고, A씨는 대화 중 사이트 검색을 통해 마약을 실제 구매해 퀵서비스로 받았다. 이후 A씨는 B씨가 알려준 주소지에 찾아갔다가 대기하고 있던 수사관들에게 체포됐다.
앞서 1심은 “B씨가 유인한 사정은 인정되나 유인행위 내용이 A씨에게 범행을 용이하게 한 것에 불과해 계략 등을 써서 범죄를 유발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마약을 매수해서라도 성관계를 해야겠다고 이미 범행을 결의한 A씨가 먼저 구매 취지를 말한 사정이 있다”고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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