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브렉시트’ 앞두고 궁지에 몰린 英총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11일 03시 00분


1989년 영국 일간신문사인 ‘데일리 텔레그래프(The Daily Telegraph)’의 벨기에 브뤼셀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한 영국인 기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유럽연합(EU) 체제에 반대하는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영국의 자존감이 묻어나는 기사들이었죠. 약 20년 뒤 이 기자는 런던의 시장이 됩니다. 그는 2016년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브렉시트(Brexit) 논의가 나오자 국민투표를 주도했습니다. 이 인물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55·사진)입니다.

존슨은 의회 강경파의 지지로 7월 총리에 선출됐습니다. 내각을 이끈 지 두 달이 채 안 됐지만 그는 현재 브렉시트 문제로 진퇴양난에 빠져있습니다. 존슨 총리는 그간 영국이 아무런 협상 없이 유럽연합을 떠나는 ‘노딜(No Deal) 브렉시트’를 밀어붙여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영국 하원에서 노딜 브렉시트 방지법을 통과시키며 존슨의 행보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이 법안은 다음 달 19일까지 유럽연합과 합의하지 못하면 내년 1월 말까지 브렉시트를 3개월 더 연기하도록 강제하고 있죠.

존슨 총리는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습니다. 여당인 보수당 소속 의원 21명도 존슨에게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존슨 총리는 해당 의원들을 출당시키고 의회를 해산해 다음 달 15일에 조기 총선을 실시하자는 법안을 냈지만, 이 역시 하원에서 부결되고 말았습니다. 총리 취임 이후 의회에서 실시된 세 차례 주요 표결에서도 존슨은 모두 패배했습니다. 필립 해먼드 재무장관을 비롯해 여러 정부 각료들이 존슨 총리에게 등을 돌리며 사퇴했습니다.

총리의 가족도 반대가 큽니다. 정치인 겸 작가인 아버지 스탠리(79)는 줄곧 총리와 이견을 보였습니다. 총리의 여동생 레이철 존슨(54)은 트위터에 “우리 가족은 식사자리에서 브렉시트에 대한 이야기를 피한다. 총리를 집단 따돌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죠. 총리의 동생이자 기업부 부장관인 조 존슨(48)은 사퇴 의사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존슨 부장관은 ‘영국이 유럽연합에 잔류해야 한다’면서 브렉시트 재투표까지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총리의 의지는 결연합니다. 총리는 5일 동생이 사퇴 의사를 표명한 날 “브렉시트를 추가 연기하느니 차라리 시궁창에서 죽는 게 낫다”고 말했습니다.

왜 영국 국민들은 유럽연합에서 벗어나는 길, 브렉시트를 택했을까요. 유로존 국가들은 서로 화폐가 다르고 경제 수준과 산업경쟁력도 천차만별입니다. 문화와 경제, 관습과 제도도 다르죠. 유럽연합은 이런 국가들을 하나로 묶은 불완전한 통화 연방입니다. 유럽합중국 수준으로 강도 높은 통합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불안정함이 지속될 수밖에 없죠. 일례로 유럽연합 모든 국가에 같은 금리를 적용했을 때 나라마다 유불리가 달라지곤 합니다. 영국은 특히 독일의 마르크화에 연동되는 유로존 환율 시스템에 거부감이 컸죠.

과거 대영제국의 향수를 안고 있는 영국은 국가에 대한 자존감이 매우 강한 나라입니다. 브렉시트 방법론과 관계없이 통화 발행권과 파운드화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고 있죠. 이 때문에 영국이 유럽연합의 유럽합중국화에 동참할 가능성은 낮아 보이기도 합니다. 통합 수준을 높이고자 하는 유럽연합의 ‘구심력’과 이를 벗어나고자 하는 영국의 ‘원심력’이 공존하는 가운데, 세계가 영국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브렉시트#보리스 존슨#영국 총리#유럽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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