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정의의 현주소를 짚는 신간 ‘판결과 정의’를 출간한 김영란 전 대법관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달개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 하고 있다.ㄴ뉴시
“계층 사다리를 막아버리는 사회는 옳지 않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게 어려워지는 사회는 발전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으로 우리 사회의 부정청탁 관행을 뒤바꾼 김영란 전 대법관(63)은 17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신간 ‘판결과 정의’(창비)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말했다.
앞서 김 전 대법관은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2015년·창비)를 펴낸 바 있다. 이 책에는 그가 대법관으로 재임하며 참여했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돌아보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이번 ‘판결과 정의’에선 대법관 퇴임 이후 선고된 대법원 판결과 전원합의체 판결을 되짚어보는 내용을 담았다.
“가부장제 본질은 계층화로 구축된 위계질서”
가부장제 문제는 책의 첫 장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김 전 대법관은 “사법부는 원칙적으로 주어진 법에 따라 판단하지만 같은 법에 대해서도 사회가 공유하는 통념의 변화, 민주주의의 성숙도 등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타나기도 하고 그에 따라 판결도 달라지곤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통념이 변하면서 호주제와 같은 제도적 성차별이 사라지기도 했지만, 가부장제와 같은 성별 계층화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성별의 차이로부터 나오는 현상이 아니다. 이분법적 논리에 기반을 둔 채 오랜 시간동안 남성 우위의 질서가 구성돼왔다”며 “이러한 문제의식이 확산되면서 사회가 변하고 가부장제가 점차 해체되어감에도 대법원은 변화를 다소 보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의를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려워”
책 제목에 ‘정의’가 들어있지만, 정의를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는다. 김 전 대법관은 “방법을 모르는 것이지 어떤 게 정의로운 건지 다들 알지 않나”라며 “옳다, 그르다. 사람들이 느끼는 공정한 사회를 잊지 말고 판결을 해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잘 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판결은 마침표가 아니다. 우리는 쌓여가는 판결을 돌아보며 판결이 사회를 더욱 정의롭게 했는지 살펴보고, 사법부의 판단이 더 옳은 쪽으로 갈 수 있도록 사회 전반의 통념과 공감대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근 가장 논란인 조국 법무부 장관과 그의 딸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도 나왔다. 하지만 김 전 대법관은 “그 얘기는 오늘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며 “출판사가 마련한 자리이기 때문에 묻힐 것 같다. 다음 기회에 하겠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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