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자금 수백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보그룹 회장의 넷째 아들 정한근(54)씨가 해외 도피 21년 만에 법정에 나와 자신의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윤종섭)는 25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재산국외도피) 등 혐의로 기소된 정씨에 대한 1차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지난 7월부터 준비기일이 세차례 열리는 동안 출석하지 않았던 정씨는 이날 수의를 입고 초췌한 모습으로 피고인석에 앉았다. 직업을 묻는 인정신문에는 “무직”이라고 밝혔다.
그는 ‘검사가 진술한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는 게 맞냐’고 재판장이 묻자 작은 목소리로 “네”라고 답하고 끄덕였다. ‘그 밖에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확인하는 질문에는 “변호인한테 일임하겠다”고 했다.
이후 진행된 서류증거조사 과정에서 정씨 측 변호인은 “실질적으로 횡령은 정씨가 주도적, 능동적으로 한 게 아니다”라며 “부친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과 정 전 회장 지시를 받는 임직원에 의해 더 주도적으로 됐고, 정씨는 중간에서 아버지 뜻을 거스를 수 없어 사실상 승인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정씨 측은 “오래된 옛날의 일들이라 일부는 모르는 내용이 있다고 해서 (병합 사건과 관련해) 조금 더 심도있는 검토가 필요하다”며 “저희가 인정하게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생각되는데 (다음 기일을) 10월말 정도로 해주시면 그 기일에 증거조사를 마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충분히 준비하겠다”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정씨 측 의견을 받아들여 다음달 30일 오전 10시 2차 공판기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정씨는 한보그룹 자회사 동아시아가스 회사자금 2680만달러(당시 환율기준 260억여원)을 스위스의 차명 계좌를 통해 횡령하고 재산을 국외에 은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아울러 국세 253억원도 체납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와 해외 도피 과정에서 필요했던 서류를 위조한 공문서위조 혐의를 받는다.
정씨는 1998년 6월 수사 과정에서 잠적했고, 검찰은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고 2008년 9월 그를 재판에 넘겼다. 대검찰청 국제협력단은 추적 끝에 정씨를 파나마에서 검거했고, 브라질(상파울루), UAE(두바이)를 거쳐 지난 6월22일 정씨를 국내로 송환했다.
정씨는 타인의 신상 정보를 이용해 캐나다,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는 등 신분을 세탁해서 도피 행각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검찰은 정씨의 부친 정 전 회장은 지난해 12월1일 에콰도르에서 숨진 것으로 최종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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