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인천 강화도 본섬에 진입하는 강화대교 앞. 군인들이 오가는 차량의 소독 절차를 관리하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방역 때문에 길이 780m의 강화대교를 건너는 데 5분 넘게 걸렸다.
이날 강화군은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도살 처분 종료’를 선언했다. 강화군에서 키우던 돼지 4만3600여 마리가 모두 도살 처분된 것이다. 이는 ASF 확진 판정을 받은 돼지농장 13곳 중 5곳(6일 기준)이 강화군에 있는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정부가 취한 ‘극약처방’이었다. ‘돼지 제로(0)’ 상태가 됐는데도 방역 당국은 혹시라도 남아 있을 바이러스를 차단하기 위해 방역을 멈추지 않았다. 소독과 방역에 협조해 달라는 현수막이 섬 곳곳에서 나부꼈다.
강화군 불은면의 한 마을에선 출입금지 안내판과 초록색 펜스에 둘러싸인 돼지 매몰지를 볼 수 있었다. 여섯 번째 ASF 확진 판정이 난 지역의 돼지를 묻은 곳이다. 매몰지 인근은 역한 냄새가 진동했다. 매몰지 배출구에서 나오는 가스 때문이었다. 매몰지에서 수백 m 떨어진 언덕 위 시설물에는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 있고 생석회 가루가 잔뜩 뿌려져 있어 한눈에 도살 처분 대상 돼지농장임을 알 수 있었다.
지난달 16일 경기 파주시에서 ASF가 처음 발생한 뒤 경기 북부 일대로 빠르게 번지자 농림축산식품부는 강화군에 이어 파주시와 김포시에서 키우는 돼지도 모두 없애겠다고 3일 밝혔다. 파주와 김포에서 ASF 확진 판정을 받은 농장은 각각 5곳, 2곳이다. 이들 지역 내 돼지는 감염 여부와 상품성 등을 따져 문제가 없으면 도축해 출하하고 감염 의심 등 문제가 있으면 도살 처분한다.
정성껏 키운 멀쩡한 돼지를 묻게 된 농장 주인들은 허탈해했다. 돼지 4600마리를 처분한 한모 씨(63)는 “자식 같은 돼지들이지만 전국적인 전파를 막기 위해 강화군 농민들이 뜻을 모아 도살 처분에 동의했다”고 했다. 2010년 구제역 때도 돼지 4020마리를 잃었다는 그는 “양돈시설에 40억∼50억 원을 투자해 이번 사태가 끝나도 또 돼지를 길러야 한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정부가 가축 질병에 철저하게 대응해 달라”고 했다.
ASF 발생 지역에선 방역에 집중하면서도 불안을 떨치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날 찾은 김포시 통진읍의 한 거점소독초소에선 하루 3교대로 방역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2, 3시간에 한 번씩 5t 크기의 소독탱크 2개를 갈아야 하는 축협 관계자는 “농민들이 마음고생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소독만 잘되면 힘든 것은 없다”고 했다. 이날 충남 보령시 천북면과 경기 포천시 농가에서 ASF 의심신고가 접수됐지만 검사 결과 모두 음성이었다.
정부의 예방적 도살 처분에 대해 필요성을 인정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이에 반발하는 농가도 적지 않다. 대한한돈협회 경기도협의회는 5일 “생업의 존폐 위기로 내모는 일방적 결정”이라며 “파주 김포 연천 일부 지역 내 모든 돼지를 대상으로 한 선수매, 후예방 도살 처분 방침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문을 냈다. 박광진 경기도협의회장은 “과거 구제역 사태 때도 사후 생계 보장 등의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는 구체적인 생계 대책부터 마련하고 농가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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