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방향 카시트, 어린이사망 크게 줄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16일 03시 00분


[생명운전 1000명을 살린다]<17> 노르웨이의 어린이 교통안전

지난해 노르웨이의 어린이(12세 이하) 교통사고 사망자는 1명으로 10만 명당 0.1명이었다. 숨진 1명의 어린이는 보행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차량에 타고 있던 어린이가 교통사고로 숨진 경우는 없었다. 지난해 한국의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는 34명으로 10만 명당 0.6명이다. ‘트뤼그 트라피크’의 어린이안전 담당자인 안 헬렌 한센 씨는 노르웨이에서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가 적은 이유를 설명하면서 ‘역방향 카시트’를 대표적으로 꼽았다. ‘안전한 교통’을 의미하는 트뤼그 트라피크는 1956년에 설립된 노르웨이 최대 교통안전 비정부기구(NGO)다.

역방향 카시트는 탑승자가 차량 주행 방향과 반대쪽을 바라보도록 설치된다. 한센 씨는 “노르웨이에서는 약 20년 전부터 차량에 탑승한 어린이 안전을 위해 역방향 카시트 설치가 강조돼 왔다”며 “차량 충돌이나 급정거시 몸집이 작은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해선 역방향 카시트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노르웨이에서는 '역방향 카시트'에 앉혀진 어린이를 흔하게 볼 수 있다. 노르웨이의 교통안전 관련 비정부기구 관계자는 노르웨이의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 수 감소의 주된 이유 중 하나로 역방향 카시트를 꼽았다. 트뤼그 트라피크 제공
노르웨이에서는 '역방향 카시트'에 앉혀진 어린이를 흔하게 볼 수 있다. 노르웨이의 교통안전 관련 비정부기구 관계자는 노르웨이의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 수 감소의 주된 이유 중 하나로 역방향 카시트를 꼽았다. 트뤼그 트라피크 제공
빠른 속도로 달리던 차량이 외부 물체와 충돌할 경우 정방향 카시트에 앉은 어린이는 충격이 머리에 집중된다. 머리가 전체 몸 크기의 약 6% 정도인 성인과 달리 어린이(1세 기준)의 머리는 몸 크기의 약 25%여서 충돌 사고 시 머리 부분을 다칠 위험이 더 크다. 실험 결과 시속 40km로 달리는 차량이 벽에 충돌했을 때 탑승 중인 몸무게 30kg 어린이가 받는 충격은 1t에 달했다. 1960년대 스웨덴 샬메르스 공대 연구팀은 엄청난 추진력으로 쏘아 올려지는 우주선에 탑승한 우주비행사들의 좌석 방향을 보고 역방향 카시트를 생각해냈다. 정방향으로 앉아 있을 때는 머리 부분에 충격이 쏠리지만 역방향에서는 충격이 등을 통해 몸 전체로 분산돼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본 것이다. 스웨덴 완성차 업체 볼보가 1972년에 역방향 카시트를 상용화했다.

노르웨이 정부는 트뤼그 트라피크의 제안으로 2000년부터 어린이 안전을 위해 역방향 카시트 사용을 적극적으로 권고했다. 역방향 카시트 사용 차량이 늘어나면서 2003년 한 해 19명에 이르렀던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가 차츰 줄어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은 해마다 3명 이하였다. 미리암 크반비크 트뤼그 트라피크 선임고문은 “역방향 카시트가 널리 보급될 수 있었던 건 적극적인 홍보와 교육 덕분이었다”며 “연령과 국적에 상관없이 노르웨이에 사는 모든 어린이가 차량으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올바른 카시트 사용법을 계속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은 2006년부터 키 135cm, 몸무게 36kg 미만인 어린이의 카시트 사용을 의무화했다. 또 15세 미만 어린이와 청소년의 안전띠 착용 및 카시트 사용에 대한 책임을 운전자에게 지우는 교통안전법을 시행하고 있다. EU 회원국이 아닌 노르웨이도 같은 내용의 법안을 시행하고 있다. 한센 씨는 “노르웨이 정부는 4세까지는 무조건 역방향 카시트를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며 “트뤼그 트라피크는 노르웨이 정부와 함께 15개월 미만이거나 몸무게 9kg 미만인 어린이의 경우에는 역방향 카시트 사용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도로교통법상 카시트를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대상은 6세 미만의 어린이다. 하지만 6세가 넘었어도 몸집이 작은 어린이에 대한 의무 사용 규정이 없고, 조수석에서는 역방향 카시트를 사용하는 것을 제한하는 내용도 없다. 조수석 에어백이 터질 경우 조수석에 설치된 역방향 카시트에 앉은 어린이는 심각한 부상을 입을 수 있다. 이 때문에 EU와 노르웨이에서는 조수석에 역방향 카시트를 설치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박수정 한국교통안전공단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9월 모든 도로에서 전 좌석 안전띠 착용이 의무화될 때 6세 미만 어린이의 카시트 사용도 의무화됐지만 여전히 도시부 도로에서의 어린이 카시트 착용 비율은 54.7%에 불과하다”며 “카시트를 챙기지 않아 차량 탑승 어린이가 다치거나 숨지는 건 전적으로 어른들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노르웨이에서는 어린이의 통학거리가 편도 2km를 넘길 경우 국가가 무료로 통학 차량을 지원하도록 돼 있고 어린이 통학 차량에는 대부분 3점식(허리뿐 아니라 어깨 부분도 대각선으로 채우는 형태) 안전띠를 사용한다. 올해 5월 인천 연수구에서 발생한 어린이 축구클럽 통학 차량 교통사고로 숨진 2명의 어린이가 착용하고 있던 안전띠는 허리 부분만 둘러 채우는 2점식이었다.

현재 정부가 보유한 연구용 어린이 더미(실물과 똑같이 만든 실험용 인형)는 2종류뿐이다. 6세와 10세 크기의 모형 2개씩이다. 개당 1억 원이 넘다 보니 한정된 예산에서 모든 연령의 더미를 갖추기 어렵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용호 의원(무소속)은 “차량 탑승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한 국내 연구 여건이 열악하다”며 “관련 분야 예산과 정책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 공동기획 :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한국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 한국교통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tbs교통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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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노르웨이#어린이 교통사고#역방향 카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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