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로 파견돼 헌재 내부정보를 법원행정처에 전달한 현직 부장판사가 헌재가 내부정보를 법원에 전달하는 것을 일부 용인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다만 헌재연구관 보고서를 전달한 것은 “적절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또 유출한 헌재 내부정보가 법원의 판단을 돕기 위한 용도로만 쓰일 것으로 생각했지, 강제징용 사건의 피고 측 대리인 김앤장 측에 전달될 것이라고 상상도 못 했다고 했다.
헌재 파견 법관이던 최모 부장판사는 1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공판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최 부장판사는 2016년 9월 한정위헌 기속력이 쟁점이 됐던 제주대 교수 뇌물수수 사건과 관련, 헌재 선임연구관이 작성한 문건을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에게도 전달했다.
문건을 작성한 선임연구관은 복사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최 부장판사에게 빌려줬는데, 최 부장판사는 이를 사진으로 찍어 이규진 전 상임위원에게 전달했다고 했다.
최 부장판사는 “(선임연구관) 방에서 보고 왔어야 하는데 선임연구관이 ‘가지고 가서 나중에 돌려달라’고 하셔서 법원에도 알려주시란 취지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검찰이 헌재 내부동향을 이 전 상임위원에게 보고한 이유를 묻자 “워낙 중요한 이야기를 막해주시니 그걸 듣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까…”라며 말을 흐렸다. 검찰이 재차 “그런 권한을 부여받은 건 아니잖냐”고 묻자 “소통업무를 하러 갔으니까, 소장이 연임하지 않겠다고 한 말씀은 오히려 전달해주기를 바랐던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강일원 재판관도 ‘명시적으로 법원도 이런 (헌재) 입장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다”며 “제가 참 애매한 상황 속에 놓인 사람이다”라며 두 기관 사이에 낀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검찰이 “헌재가 몰래 헌재 이익에 반하는 정보까지 행정처에 제공한 것까지 용인한 것이냐”고 묻자 최 부장판사는 “헌법재판관들이 저를 ‘법원스파이’라고 많이 놀리긴 했다”며 “구체적인 건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참 애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헌법재판관들을 포함해 헌재 내부 구성원들이 파견 법관들이 ‘친정’인 법원에 내부정보를 보고하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인식·용인하고 있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애매하다는 게 무슨 뜻이냐”고 검찰이 다시 묻자 “적절치는 않은 거 같다”고 말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지시를 받고 한일청구권 관련 헌재연구관 보고서를 전달한 이유에 대해 “관련된 법원, 대법원의 올바른 판단을 위해 도움을 받으려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다”며 “법원행정처가 대법원장에게 정무적 보좌를 하는 곳이니 만큼 판단하시는 데 자료로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검찰이 “강제징용 사건의 일본기업 측 대리인 김앤장의 한상호 변호사가 법원행정처에 한일청구권 협정 관련 상황을 문의해서 임 전 차장이 연구관 보고서를 요청한 사실에 대해 아냐”고 묻자 놀라며 “전혀 알지 못했다”며 “사실입니까?”라며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최 부장판사는 “(외부에 전달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며 “법관으로서 동료들과 사건 해결을 위해 다른 판결문을 검토한다거나 자료를 공유하는 관행이 있는데, 이게 외부로 나가는 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어떤 경로로도 법원 외부로 유출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 부장판사는 헌재로 파견된 지 얼마 되지 않은 2015년 4월께 강형주 당시 법원행정처 처장과 이규진 상임위원이 파견법관들에게 점심을 사주는 자리에서 “ 이 상임위원이 ‘(파견지에서) 민감한 정보가 있으면 바로바로 전달해주라. 인사평정권자가 법원행정처 처장이다. 잊지 말라’고 말한 사실이 있다”고 설명했다.
최 부장판사는 이 상임위원이 파견법관들이 의기소침해질 정도로 혼을 내면서 이야기를 해 당황했다고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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