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딸 얼굴을 한번에 알아봤다. ‘긴장해서 터질 것 같다’는 가슴을 부여잡고 기다리던 엄마는 딸의 얼굴이 공항 출국장에 비치자 곧장 달려 나가 딸을 품에 안았다. “경하야!” 44년 만에 직접 얼굴을 보고 불러보는 이름이었다.
장기실종자 신경하씨(49·여, 미국명 라우리 벤더)가 18일 오후 5시55분 인천국제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1975년 5월9일 시장에 가는 엄마에게 ‘따라가지 않고 놀겠다고’ 말만 남기고 사라진 뒤 44년 만이다. 반세기만에 돌아온 딸을 안은 엄마 한태순씨(67)는 한동안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지만 딸을 품에 안으니 태순씨의 눈에서는 눈물만 났다. “아임 쏘리, 아임 쏘 쏘리(I‘m sorry, I’m so sorry).” 되지 않는 영어였지만 여섯살 아이가 중년의 여성이 돼 눈앞에 나타난 기막힌 상황에 태순씨는 입에서는 미안하다는 말만 나왔다. “어떻게 살았니, 경하야 어떻게 살았어.” 이어 한 맺힌 말이 터져 나왔다.
태순씨는 어제밤 한숨도 잘 수 없었다. 심장이 너무나 빨리 뛰어서 청심환도 하나 챙겨 먹었다. 지난 4일 딸을 찾았다는 소식을 들을 뒤 통화도 하고 문자도 했지만 딸을 얼굴을 직접 볼 생각을 하니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이날 오후 5시쯤 공항에 도착한 태순씨는 딸이 탄 비행기가 도착하는 시간이 가까워져 올 수록 마음이 초조해졌다. 준비해온 물병을 찾아 타는 목을 축이기도 했다. 이런 태순씨의 마음을 알았는지 오후 5시20분에 도착 예정이었던 비행기는 10분가량 일찍 인천에 내렸다.
경하씨를 끌어앉은 태순씨의 손은 한동안 풀리지 않았다. 모녀는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꼭 닮은 얼굴이, 그리고 느껴지는 체온이 서로가 가족임을 증명했다. 서로를 만난 심정에 대해 태순씨는 “안아보니까 내 딸이 맞았어, 얼굴을 대보니까 내 딸이 맞았어”라고 말했다. 경하씨도 “나와 똑 닮은 사람이 눈 앞에 보여서 너무 신기했다”고 답했다.
1975년 충북 청주시에서 길을 잃고 사라졌던 경하씨는 제천에 있던 보육원까지 흘러가게 됐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6년 미국 버지니아주로 입양됐다. 태순씨가 44년 동안 국내에서 경하씨를 행적을 백방으로 알아봐도 찾을 수 없었던 이유다.(관련기사: [어디있니?] ‘꽃신’ 신고 사라진 6살 딸 경하, 44년간 헤매다 찾았다)
두 모녀를 이어준 것은 DNA였다. 태순씨는 4년전 입양된 한인들의 DNA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친부모를 찾아주는 비영리단체 ‘325캄라’(325kamra)에 DNA를 등록했다. 이어 최근 딸의 권유를 받은 경하씨가 DNA를 정보를 등록하면서 상봉이 이뤄졌다.
이제는 자신도 엄마가 되서 한국을 찾은 경하씨는 딸과 함께 20여일 동안 한국의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경하씨는 가족들과 함께 자신이 어릴 적 살았던 동네와 보육원을 방문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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