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폴리텍대의 반도체 특화과정
전문대 유일 반도체 제조환경 조성
특화 캠퍼스 안성을 중심으로 클러스터 구축해 전문 인력 육성
반도체 대기업의 협력업체에 다니던 정재경 씨(25)는 입사 10개월 만에 사직하고 지난해 한국폴리텍대 청주캠퍼스에 입학했다. 반도체시스템과에서 반도체 분야의 직무역량을 키우고 싶어서였다. 정 씨는 사실 4년제 사립대 반도체공학과를 다니다가 이론 중심의 수업에 답답함을 느껴 자퇴했다. 그는 “학교 수업은 현장과 동떨어져 있고, 회사에 들어가 일을 배우자니 한계가 있었다”며 “폴리텍대는 이론교육과 실습을 병행해 직업능력을 키우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 기업 클린룸이 학교 캠퍼스로
정 씨가 입학한 폴리텍대 청주캠퍼스 반도체시스템과는 기존 자동화시스템과를 개편해 2007년 생겼다. 반도체 관련 기업 약 120개사가 모여 있을 만큼 반도체는 충북지역 핵심 산업이다. 청주캠퍼스는 지역의 산업 수요에 맞춰 인력을 양성한다.
2년 과정의 학과교육은 반도체공장 오퍼레이터와 유지보수 기술자를 길러내는 이론교육과 실습을 병행한다. 이론교육은 실무자 출신의 교수진이 한다. 실습에서도 기업이 실제 사용하는 반도체 제조 장비를 활용한다. 먼지 같은 불순물이 차단된 클린룸에서 학생들은 반도체 제품을 직접 설계하고 만들 수 있다.
반도체 제조 장비는 한 대에 최고 수십억 원을 호가해 학교에서 구비하기가 어렵다. 청주캠퍼스는 교수들이 직접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 장비를 기증해달라고 설득했다. 김상용 산학협력처장은 “장비를 기증하는 기업으로서도 향후 현장 맞춤형 인력이 회사에 들어온다는 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국 전문대 중 반도체 제조 환경을 갖춘 곳은 청주캠퍼스가 유일하다.
산업현장과 똑같은 반도체 제조 환경에서 실습하는 만큼 졸업 후 곧바로 현장에서 일하더라도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올해 반도체시스템과를 졸업하고 중견 반도체 기업에 취직한 한지희 씨(21·여)는 “회사에서 별도로 교육받지 않고도 바로 실무에 투입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반도체 대기업에 입사한 용석준 씨(27)도 “신입사원 교육 내용이 학교에서 들은 이론수업과 비슷했다”며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지식을 학교가 가르쳤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청주캠퍼스 반도체시스템과 졸업생의 올 8월 기준 취업률은 88.2%였다. 지난해 취업률 79.5%에서 더 늘었다. 대부분 SK하이닉스 삼성전자 DB하이텍 같은 기업에 취직한다.
○ 반도체 학과 클러스터 구축
올 5월 정부는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 육성정책을 발표하며 반도체 실무교육을 강화해 산업 맞춤인력을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폴리텍대는 청주캠퍼스 반도체시스템과를 비롯한 반도체 관련 4개 학과의 클러스터를 구축하기로 했다.
클러스터는 반도체 특화 캠퍼스로 바꿀 예정인 안성캠퍼스가 중심이 된다. 반도체 장비, 소재, 부품 업체들이 대거 입주할 경기 용인과 인접한 안성캠퍼스는 내년부터 기존 학과도 모두 반도체 관련 학과로 개편한다.
청주캠퍼스를 비롯해 기존 반도체 관련 학과를 운영하던 성남과 아산캠퍼스는 각각 장비 유지보수, 소재분석, 후공정 분야로 특화해 전문 인력을 양성한다. 폴리텍대 측은 4개 학과를 통틀어 현재 450명인 학생 수를 2025년 619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반도체산업에 종사하는 전문 인력을 그만큼 확대 양성하겠다는 뜻이다.
클러스터를 구성하는 4개 학과의 교과과정은 산업 수요에 근거해 개발한다. 이를 위해 폴리텍대는 반도체산업협회와 기업들이 참여하는 실무위원회를 구성했다. 산업현장에서 실무 경력을 갖춘 전문교원을 확보하는 데도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폴리텍대의 이 같은 노력은 국회에까지 입소문이 나고 있다. 15일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을 대상으로 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여야 의원들이 피감기관인 폴리텍대를 칭찬하는 이례적인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산업현장에서 실제 필요로 하는 인력을 키우기 위해 반도체 학과 교육과정을 개선하는 열정을 높이 산 것이다.
이석행 폴리텍대 이사장은 “최근 반도체 업계가 소재 부품 등의 대외 의존적 구조를 탈피하고 자체 경쟁력 강화에 나서 전문 기술인력 수요가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본다”며 “산업계 수요를 따르는 교과 운영을 통해 반도체 산업 자립을 이끌 차세대 기술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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