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웹 클릭땐 필로폰 제조법 ‘쫙’… 집이 마약공장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1일 03시 00분


‘손쉬운 제조법’ 온라인으로 거래… 의약품-건전지 등 있으면 가능
소량 만드는 ‘키친랩’ 꾸준히 늘어… 국내 제조 필로폰 압수 1년새 5배로
경찰, 다크웹 마약 전담팀 확대

올 4월 대구의 한 주택에 마약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필로폰을 직접 제조해 ‘무료 샘플’이라며 다른 사람에게 건넨 20대 A 씨(무직)를 검거하기 위해서였다. A 씨의 집엔 필로폰 제조에 사용된 재료들이 널려 있었다.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구매한 일반 의약품과 건전지 등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A 씨는 특정 브라우저(인터넷 검색 프로그램)를 이용해야만 접속할 수 있는 다크웹의 마약 정보 사이트에서 ‘셰이크 앤드 베이크’(서로 다른 원료를 병에 넣고 흔들어 섞는 것)라는 제조법을 읽고 그대로 따라한 것으로 파악됐다.

A 씨 사례처럼 국내에서 제조돼 적발된 필로폰 양이 최근 크게 늘면서 한국이 20여 년 만에 ‘마약 제조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수사기관에 적발돼 압수된 국내 제조 필로폰은 2016년 200g에서 2017년 513g, 지난해 660g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31일 현재까지 3601g이 적발됐다. 대부분은 전문 기술자가 아닌 일반인이 자택이나 호텔 객실 등의 ‘키친랩’(소규모 개인 작업장)에서 만든 것이었다.

이는 1990년 10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마약 제조 조직을 대대적으로 단속할 때와 다른 양상이다. 당시엔 ‘필로폰 동원 목장파’, ‘필로폰 유한 농장파’ 등 마약 이름을 버젓이 내건 폭력조직이 농촌에 공장을 차리고 한번에 수십 kg의 마약을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엔 폭력조직과 무관한 키친랩이 마약 제조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검경은 접속자 정보를 암호화하는 탓에 불법 정보를 공유해도 추적이 어려운 다크웹의 등장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31일 본보 취재팀이 다크웹에서 ‘범죄 백과사전’으로 불리는 H사이트에 접속해 보니 필로폰 제조법만 5가지가 상세히 나와 있었다. 제조 정보 자체가 흥정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한 이용자는 “구글에서 얻을 수 있는 제조법보다 더 쉽고 성공 확률이 높은 ‘고급 레시피’가 있다”면서 “알고 싶으면 ○○에서 활동하는 나를 찾으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키친랩에서 은밀히 이뤄지는 마약 제조를 단속하려면 원료 성분이 든 의약품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거래되는지 감시해야 한다. 하지만 현행 마약류관리법은 마약의 원료 물질을 “마약 제조에 ‘사용될 수 있는’ 물질”이 아닌 ‘사용되는’ 것으로만 좁게 규정하고 있다. 마약을 만들 의도가 뚜렷해도 의약품에서 마약 성분을 추출하기 전이라면 적발해도 처벌하기 어렵다. 실제로 대법원은 2015년 필로폰의 원료 성분이 포함된 알약 1876만 정을 가루 내어 멕시코로 밀수한 임모 씨(56) 등에 대해 마약 원료 물질 밀수죄가 아닌 일반 의약품 밀수죄만 인정했다. 대검찰청은 이를 보완할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경찰청은 다크웹 내 마약 거래를 감시하는 전담 인력을 늘리고 전문성을 갖춘 수사관을 양성할 계획이다. 일부 지방경찰청에서만 운영 중인 다크웹 내 마약 감시 전담팀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신아형 abro@donga.com·조건희 기자
#다크웹#필로폰 제조법#키친랩#다크웹 마약 전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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