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교수, 서예가 이곤 전시회 찾아… 72년전 중앙고서 사제지간 인연
“자신의 일 사랑하는 사람이 건강”
“백 년을 살아보고 두 가지를 깨달았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건강한 법이니, 나이가 들어도 놀지 말고 공부하게. 그리고 자신감을 가지라고 당부하고 싶네. 스스로 끝났다고 생각하면 정말 인생이 끝나버리거든.”
6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서예가 오헌(梧軒) 이곤 선생의 전시회장. 올해 세는나이로 90세가 된 이 선생에게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다. 고교 때 은사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다. 김 명예교수는 세는나이 100세로 이 선생보다 정확히 열 살 많다. 그는 옛 제자의 전시회를 감상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해 축하와 함께 따뜻한 조언을 건넸다. 책 ‘백년을 살아보니’의 저자인 김 명예교수는 지금까지도 강연과 집필을 왕성하게 하고 있는 대표적인 장수(長壽) 지식인으로 꼽힌다. 그는 연세대 철학과 교수가 되기 전 중앙고 교사로 7년간 재직했다. 이 선생은 1947년 중앙고에 입학했고, 당시 윤리교사였던 김 명예교수를 만났다. 그는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깨워주셨고, 내 가치관의 밑바탕을 그려주신 은사님”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1950년 6·25전쟁 때문에 관계가 끊겼다. 이 선생은 군대로 징병됐고, 김 명예교수는 1954년부터 30년간 연세대 철학과 교수로 강단에 섰기 때문이다. 이 선생은 “언젠가 꼭 은사님을 전시회에 초청하고 싶었는데, 이번이 그 기회라고 생각했다”며 “지난달 아주 오랜만에 도록을 들고 찾아뵀더니 흔쾌히 수락하셨다”고 말했다.
김 명예교수가 전시회를 방문한 이날 오후 2시에는 중앙고를 졸업한 동문 열댓 명도 자리를 함께했다. 이들은 “선생님, 제가 이름을 바꿨어요. ○○인데 기억하시나요?” “아주 정정하십니다”라며 인사를 건넸다. 김 명예교수는 구순이 가까워진 백발의 제자들에게 스승으로서 인생의 가르침을 전했다.
“철드는 나이가 무엇일까. ‘나 스스로를 믿고 살 만한 나이가 언제인가’를 의미하지. 60세가 되고 나니 철이 들더군. 인간의 기억력은 50세부터 감퇴하는데, 60∼75세까진 그래도 성장하지. 인생의 황금기는 바로 그때야.”
1940년대 교실로 돌아간 듯 선생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는 제자들에게 김 명예교수가 덧붙였다. “나는 지금도 매일 일기를 쓰면서 작년, 재작년의 일기를 꼭 읽어봐. 언제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자기계발을 하려는 의욕이 필요하다네. 나이가 들어도 그래.”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아 스승의 가르침을 듣고 있던 제자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선생은 김 명예교수를 모시고 전시장을 둘러보며 자신이 쓴 글귀를 빼놓지 않고 하나하나 설명하는 시간도 가졌다.
교사와 제자 간에 폭언과 폭행이 벌어지고 소송까지 하는 이 시대에 100세 스승과 구순 제자의 만남은 뜻깊다. 김 명예교수는 “부모는 자식이 잘될 때 기쁘듯, 교사는 내 제자가 잘될 때 기쁘다”며 “오늘 제자의 전시회에서 느낀 이 기쁨은 교육자가 아니라면 느껴볼 수 없는 행복”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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