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매장에서 일을 하는 허모씨(34)는 지난 1월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다가 진로변경하는 차량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허씨는 사고 뒤 피해자 구호 등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고 경찰의 음주측정 요구에도 불응했다.
과거에도 음주운전으로 벌금형을 2번 선고받은 허씨에게 1심은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허씨는 형량이 무겁다며 항소했고 재판은 2심으로 넘어왔다.
재판부는 허씨를 대상으로 ‘치유법원 프로그램’을 시범 시행한다고 설명했다. 낯선 개념의 이 프로그램은 재판부가 직권으로 피고인을 석방하고, 일정기간 절제력과 책임감을 키워 ‘범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8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도주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허모씨에 대한 결심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은 통상 형사재판과 달리 석방 후 허씨의 활동을 점검하고, 소감을 말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허씨는 “3개월 금주가 어려운 일인 줄 알았지만, 어느샌가 금주가 습관이 되는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며 “힘든 일이 있어도 술을 안먹고 해결하는 법을 알았고, 가족과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정 부장판사는 “치유법원은 피고인이 변화된 삶을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다”며 “피고인이 성실하게 이행해온 것에 대해 칭찬을 하고, 앞으로 격려를 한다는 차원에서 법정에서 박수를 쳐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검찰은 “재판부와 피고인 모두가 열심히 참여해 프로그램이 잘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나라에 적용하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며 “피고인에게 적절한 형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재판부는 앞으로 1개월 가량 허씨의 경과를 더 지켜본 뒤 12월4일 선고기일을 열 계획이다.
앞서 정 부장판사는 허씨가 석방된 8월23일부터 3개월간 절대 금주와 귀가시간, 그리고 금주 여부를 직접 말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활동보고서에 첨부해 매일 비공개 온라인카페에 올리는 조건을 내걸었다.
또 피고인과 재판부, 검사, 변호사 등 감독 관여자들은 매주 1번 채팅 방식으로 점검회의도 진행해왔다.
최근 음주운전 사건은 엄격히 처벌하는 추세지만, 재판부는 허씨가 스스로 행동을 바꿔 술을 마시고 운전하지 않도록 하는 ‘재범방지’에 목적을 뒀다.
통상 형사재판에는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재판부에 선처를 구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법원이 제시하는 사안을 준수하면 선처를 한다는 차이가 있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만일 피고인이 준수사항을 어기면 곧바로 보석이 취소되고 재수감될 수 있다.
앞서 재판부는 손자들이 보는 앞에서 아내를 살해한 60대 남성에게 치매전문병원 입원을 조건으로 이씨에 대해 직권보석을 허가했다. 수감생활을 계속할 경우 상태가 악화해 치료를 선행해야한다는 판단이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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