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상습 음주운전 피고인에 박수…“절대 금주 약속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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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1월 8일 15시 08분


사진=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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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음주운전 뺑소니를 저지르고 경찰의 음주측정도 거부한 30대 남성에게 처벌 대신 박수 갈채를 보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8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 씨(34)에 대한 결심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은 ‘치유법원 프로그램’ 시행 여부를 점검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치유법원 프로그램은 재판부가 직권으로 피고인을 석방하고, 일정기간 절제력과 책임감을 키워 ‘범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A 씨는 “3개월 금주가 어려운 일인 줄 알았지만, 어느새 금주가 습관이 되는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며 “힘든 일이 있어도 술을 안 먹고 해결하는 법을 알았고, 가족과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이에 재판부는 “치유법원은 피고인이 변화된 삶을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라며 “피고인이 성실하게 이행해온 것에 대해 칭찬을 하고, 앞으로 격려를 한다는 차원에서 법정에서 박수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취지에 공감하는 분들이 박수를 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의 말이 끝나고 법정 내 판사, 검사, 변호사 등 모든 사람이 A 씨를 위해 손뼉을 쳤다.

다만 검찰은 “재판부와 피고인 모두가 열심히 참여해 프로그램이 잘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나라에 적용하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며 “피고인에게 적절한 형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A 씨는 1월 17일 새벽 인천에서 술에 취한 채 운전을 하던 중 차선을 변경하던 차량을 들이받은 뒤 조치 없이 도주했다. 이후 경찰에 붙잡힌 A 씨는 세 차례에 걸쳐 음주측정을 요구받았지만 이를 모두 불응했다.

1심 재판부는 과거에도 음주운전으로 벌금형을 2번이나 선고받은 A 씨에게 “음주운전은 자신은 물론 타인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에 위협을 가하는 중대 범죄”라며 징역 1년을 선고했다. A 씨는 1심 선고 후 항소심 재판을 받으며 3개월 정도 수감생활을 했다.

2심 재판부는 8월 A 씨에게 치유법원 프로그램 참여를 제안했다. 재판부는 치유법원 프로그램 내용으로 A 씨에게 ▲직권 보석 석방 후 3개월 금주 ▲퇴근 후 오후 10시 내 귀가 ▲인터넷 카페를 통한 일일 보고서 작성 ▲채팅을 통한 보석 준수회의 참여 등을 제안했다. 또 A 씨의 준수 태도를 보고 이를 양형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법원의 제안을 수용한 A 씨는 석방 후 3개월여 동안 조건들을 이행했다. 이날 법정에서는 A 씨의 3개월 동안의 생활에 대해 확인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A 씨에 대한 치유법원 프로그램 진행 경과를 확인하는 시간이 끝난 뒤 일반 형사법정의 모습처럼 결심 공판이 진행됐다.

재판부는 앞으로 A 씨의 경과를 더 지켜본 뒤 다음달 4일 선고 공판을 진행할 계획이다.


서한길 동아닷컴 기자 stree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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