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를 때려 태아가 사망하거나 다친다면 태아에 대한 살인, 상해죄가 적용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나라 법률과 판례에 따르면 적용되지 않는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24단독 이기홍 판사는 임신 초기 여자친구가 임신중절수수을 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품고 농구화로 배를 발로 걷어차는 등 상해를 입힌 30대 남성에게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날 재판부는 임산부에 대한 상해 혐의만 적용해 판결을 내렸다. 형법상 태아는 생명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태아에 대한 상해죄 등을 적용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다.
대법 판례(2005도3832)도 태아는 임산부 신체의 일부가 아니며, 태아와 산모를 따로 보고 있다. 이는 태아의 사망 자체가 임산부에 대한 상해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이 때문에 폭행 때문에 태아가 사망한다고 하더라도 낙태죄, 살인죄 역시 물을 수도 없다. 법률상 살인죄는 사람에게 적용되는데, 임신 초기 태아는 하나의 생명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형법 제269조 ‘낙태죄’는 낙태를 하려는 고의를 가지고 임산부 본인 혹은 제 3자가 약물, 수술 등의 방법으로 태아를 사망에 이르게 할 경우만 해당된다.
이와 함께 임신 사실을 몰랐던 사람이 의사가 처방해준 약을 먹고 낙태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과실낙태행위에 대한 처벌규정을 두지 않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
실제로 지난 9월 강서구에서 영양제를 맞으려던 임신 6주차 임산부에게 실수로 낙태수술을 한 산부인과 의사에게도 살인죄, 낙태죄가 아닌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가 적용됐다.
형사 사건에서는 진통과 분만이 개시 된 후의 태아도 사람으로 보기 때문에, 이때 태아를 죽이게 된다면 이는 형법상 영아살해죄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지난 3월 임신 후기인 34주 임산부에게 낙태수술을 한 의사에게 경찰은 살인죄 등을 적용했다. 수술 당시 아이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는 진술을 확보해서다. 산모의 뱃속에서 태아를 꺼낸 이후에 이뤄진 행위는 낙태가 아니라 살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형법과 달리 민법상에는 손해배상은 인정된다. 민법이 태아는 손해배상의 청구권에 관해서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살아서 출생할 경우 상속권 역시 인정된다.
수도권 지역의 판사는 “그간 진통이 시작된 이후의 태아를 생명이라고 여기는 것이 법조계의 주된 시각이었다”며 “하지만 지난 4월 임신 중기인 22주차까지는 낙태가 가능하다고 헌재가 결정을 내린 후 언제부터를 생명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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