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회사원 김모 씨(39)는 최근 대만 여행을 마치고 여객기로 귀국하면서 기내식으로 제공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다가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국제공항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직접 운전해 귀가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김 씨는 맥주를 거의 그대로 남긴 채 공항에 도착해서도 몇 시간 서성이며 술이 완전히 깰 때까지 기다렸다가 운전대를 잡았다.
김 씨처럼 여객기나 공항 라운지에서 제공되는 맥주와 와인 등을 즐기는 여행객이 늘고 있지만 ‘기내 음주 후 운전’에 대한 단속은 사실상 사각에 놓여 있다. 교통 전문가들은 공항에 도착해 주차장에서 자신의 차를 찾거나 렌터카를 빌려 운전하는 이들이 전체 항공승객 중 약 10%일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공항 인근에서는 음주 단속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경찰단과 김포공항경찰대의 교통 인력이 각 8명, 5명뿐이고 나머지 공항은 지역 경찰서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전국 공항 중 유일하게 공항 구역에서 음주단속이 이뤄지는 인천국제공항에서조차 휴가철 등 특정 기간에만 경찰이 부정기적으로 단속에 나선다.
비행 시간이 2시간 정도인 노선은 이륙 후 1시간 정도 지나 술이 제공된다. 몸무게가 70kg인 성인 남성이 맥주를 한 잔 반 마실 경우 1시간이 지난 후에도 혈중알코올농도가 면허정지 기준인 0.03%로 유지된다. 하지만 항공사가 술을 제공하면서 “비행 후 운전을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본은 전국 공항에서 경찰과 항공사, 공항 운영사가 수시로 음주운전 근절 캠페인을 벌인다. 매년 9월엔 이들이 합동으로 ‘전국 교통안전운동’을 실시한다. 경찰관과 승무원이 함께 음주운전 근절 홍보물과 기념품을 승객들에게 나눠준다. 공항 측은 술을 마신 승객에게는 귀가를 위해 공항 내의 대리운전 업체까지 연결해준다. 여객터미널과 주차장 주변, 공항 연결 고속도로 나들목에서는 과적·난폭운전뿐 아니라 음주운전 단속이 수시로 벌어진다. 2017년 9월에는 59세 남성이 오키나와에서 오사카로 돌아가던 중 공항과 기내에서 350mL 맥주를 2캔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다가 경찰 단속에 적발됐다.
안성준 손해보험협회 공익사업부 사고예방팀장은 “전국의 공항 주차장에서 나가는 모든 차량에 대해 음주운전을 단속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더라도 계도조차 하지 않는 건 문제”라며 “공항과 항공사가 술을 제공할 때부터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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