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성로 일부 구간 근대 건축물
재개발 공사로 50여채 사라져… 골목관광 활성화에 악영향 우려
14일 오전 대구 중구 태평로 역전치안센터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약 80m 떨어진 재개발 공사 현장. 얼마 전까지 공구상과 카페 등이 있었지만 이날 허허벌판으로 변해 있었다. 이곳 주민과 상인들은 “일부 철거 건물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전쟁 때도 부서지지 않아 역사적 가치가 컸다”며 안타까워했다.
대구 중구 북성로 태평로 일대 공구골목이 아파트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수년간 추진했던 근대 역사 보존 사업과 어긋나면서 세금 낭비라는 부작용까지 낳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대구시는 올해 9월 포스시티㈜의 중구 태평로 2가 15-1번지 재개발 사업을 승인했다. 일대에 옛 정취를 느낄 수 있었던 건물을 포함해 약 55채가 사라진 상태다. 이곳에는 지하 4층, 지상 49층 규모의 주상복합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철거 지역을 포함한 공구골목 일대는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대구의 주요 상권이었다. 2, 3층 규모의 건물이 저마다 독특한 형태로 지어졌다. 보통 1층은 상가, 2, 3층은 주거시설로 쓰였다. 이번 재개발로 인해 사라진 건물들은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대구 중구는 2014년부터 최근까지 보존 가치가 높은 근대 건축물을 정비하는 리노베이션 사업을 추진했다. 31채에 14억4116만 원을 지원했는데 이 가운데 4채가 이번 재개발 공사 때 사라졌다.
해당 건물 4채는 북성로 내에서도 사료 가치가 높은 것들이었다는 게 상인들의 설명이다. 지원금을 받아 카페 ‘소금창고’를 운영했던 김헌동 대표는 “일제강점기 소금을 보관하는 창고로 활용됐는데 건물 내부 형태를 그대로 보존해 찾는 손님이 적지 않았다. 무분별한 재개발로 철거돼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에 철거된 ‘백조다방’은 광복 이후 주변 지역에 형성된 ‘모나미다방’ ‘꽃자리다방’ 등과 함께 전국 예술인들의 모임 장소로 유명했던 곳이다. 백조다방 안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선물한 피아노가 있었는데 더 이상 그 자리에서 볼 수 없게 됐다. 피아노는 다방 주인이 따로 보관하고 있다.
중구는 세금 낭비라는 지적에 따라 건물 4채에 지원한 1억2800만 원을 전액 환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재개발로 건물을 철거한 수혜자 A 씨는 “업체 측이 계약 당시 지원금까지 대납해 준다는 조건을 제시한 줄 알았는데 갑자기 보상금에 포함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업체 측과 논의해서 지원금 반환 주체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중구 관계자는 “건물주들이 건물을 꽤 비싼 가격에 넘겼다는데 이것은 지자체 지원금으로 보수 작업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조속히 환수 조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근현대사 전문가들은 재개발로 인한 공구골목의 역사성 훼손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북성로는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된 대구 근대골목투어의 주요 코스 중 하나다. 김정자 대구 중구 골목문화해설사(55)는 “근대 건축물 철거는 대구의 역사와 전통 가치를 없애는 것”이라며 “겨우 살아난 골목관광 활성화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부동산 시장 논리에 따른 재개발 사업을 규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장이희 대구시 건축주택과장은 “해당 건물이 사료 가치가 있더라도 주인이 재개발 업자에게 매매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북성로 다른 구역의 재개발이 추진되더라도 시가 막을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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