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초 국가지능화 종합계획을 발표하기 위해 막판 작업을 진행 중인 김명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은 21일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인터넷을 잘 쓰는 나라의 경험을 살려 과학기술 전 분야에서 이 목표를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의 인공지능 전략 수립을 지원하기 위해 ETRI 전문가들이 그려내는 이 계획은 20년 전 김대중 정부의 국가정보화 종합계획에 버금가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국가지능화 종합계획의 초안을 만들어 최종 점검 중인 김 원장을 만났다.
― 국가지능화 종합계획에 어떤 핵심과제를 담나?
“2년 전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장으로 근무할 때 일자리 창출이 주된 목표였다. 이번에는 여러 가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데 혁신성장과 유니콘기업 창출 같은 과제는 유력한 후보다. 국방안전과 도시교통, 의료복지, 에너지환경, 스마트팩토리 등을 강조할 생각이다.”
― 취임하면서 우선 연구 과제 대전환을 약속했다.
“우선 연구 과제를 창의적인 과제로 바꾸어야 한다. 응용개발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연구가 필요한 시기다. 이제 국내용 연구는 그만하고 세계적으로 통하는 연구를 하자고도 제안했다. 4차산업혁명시대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사물인터넷 시대다 우린 선진국에 비해 많아야 2년 정도 뒤처져 있다. 1986년 프랑스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했을 때 소프트웨어와 컴퓨터 기술은 절망스러운 수준으로 뒤져있었다. 그에 비하면 다행이다. 우리에게는 지금이 기회다. 향후 대덕연구개발특구가 AI 밸리로 도약하도록 준비해야 한다.”
― 정부출연연구원의 역할도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동안 출연연은 산업 발전을 위한 하드웨어 시스템을 개발하는데 주력해왔다. 우리 연구원의 경우 그 결과물은 손안의 TV라는 DMB나 이동인터넷인 와이브로 같은 것이었는데 이제 하드웨어 서비스 개발의 역할은 끝났다. 우리 연구원의 창의 연구 비중이 전체의 15% 정도 된다. 이걸 10년에 걸쳐 50%까지 늘리려고 한다. 출연연은 이제 남이 가지 않은 길을 탐색하는 새로운 역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 과학기술이 국민생활에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헌법(127조 1항)은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해야 한다’고 돼있다. 과학기술을 경제발전의 수단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은 창의성과 과학기술 지평 확대를 목표로 삼는다. 과학기술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바뀌어야 소재 부품 장비 산업의 문제 해결도 노벨상 수상자 배출도 꿈 꿀 수 있다.”
― 연구의 ‘현장 주의’를 강조한다.
“소프트웨어콘텐츠연구소장 시절인 2009년 화재진압 소프프웨어 공동개발을 위해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소에 갔다. 당시 37살의 이 연구소 연구팀장의 집을 잠시 방문했던 기억은 평생 충격으로 남아 있다. 벽에 프랑스 중급 민간인 소방관 자격증이 벽에 걸려 있었다. 독일에서 초급을 땄는데 중급이 없어 프랑스에서 땄다고 했다. 자격증 취득 실습과정에서 끔찍한 죽음의 공포를 겪었다고 했다. 무심결에 이런 걸 왜 따느냐고 물었다. 그가 오히려 의아한 듯 대답했다. ‘왜 따다뇨? 화재현장의 문제를 풀려는 연구자가 소방관이 돼보지 않고 어떻게 좋은 결과물을 기대하나요?’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그 순간 탁상공론에 익숙한 국내 연구 분위기가 교차됐다.”
― 연구자가 창업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인가?
“연구자가 직접 창업을 하고 죽음의 계곡을 직접 넘어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창업만이 진정한 기술사업화다. 기술을 직접 개발한 사람은 절대 넘겨줄 수 없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
―우리의 창업 환경이 열악하지 않은가?
“우리 창업 환경도 많이 변했다. 과거에는 열악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돌밭에서 크고 작은 돌을 골라내고 땅도 비옥하게 만들었다. 아들이 창업한다고 했을 때 아내는 극구 말렸지만 나는 ”이젠 나가도 된다“고 흔쾌히 허락했다. 부모로서 허락할 수 있을 정도로 창업 환경은 많이 나아졌다. 우리 민족의 창의성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빌게이츠나 주커버크 같은 천재들이 나올 수 있다. 2008년 기획본부장시절 최문기 전 미래창조과학부장관과 ‘에트리 홀딩스’를 만들었다. 당시 목표는 유니콘 기업 20개를 만드는 거였다.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 연구자들은 왜 직접 창업에 뛰어들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그런 연구자들은 우리의 당초 목표가 사회문제 해결이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 출연연이 지역과의 협력에 인색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취임하면서 연구과제의 대전환과 더불어 지역 균형발전과 지역 혁신의 동반자가 되자고 제안했다. 우리 연구원의 대구센터나 광주센터, 판교센터에 각각 50여명이 근무하는데 2배로 늘릴 계획이다. 우리 연구원과 시민이 다니는 도로가 만나는 부분에 시민과 공유하는 정보통신기술(ICT) 도서관을 만들 계획이다. 대전시와 협력해 가칭 대전과학기술기획평가원 같은 기관을 만들어 고경력 및 은퇴 과학자들을 활용할 생각이다. 이들은 한 때 그 분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탁월한 연구자이고 전략가들 아니었나.”
― 대전 예찬가 라고 알려져 있다.
“1986년 귀국했을 때 당시 대전의 인구는 50만이었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 현장이었던 알자스로렌 인근 낭시에서 유학을 했는데 규모가 비슷해 고향은 아니지만 친숙한 느낌이었다. 1989년 부모님 대전으로 모시고 아이들도 초중고를 여기서 보냈다. 대전 시내에서 30분만 차를 몰고 나가면 울창한 자연이다. 아마도 인근 계룡산은 1000번쯤 올랐을 거다. 대전체임버오케스트라 후원회장을 지내고 있고 기관 차원에서 최근 대전시립미술관 청년작가 지원사업에 참여했다. 다른 어느 곳 보다 삶의 질이 3배쯤 높은 도시라고 생각한다. 퇴직하고도 인근에 귀촌해 스마트 팜을 운영하며 살 계획이다. 이미 지인들과 귀촌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흰 보라 팜’이라는 농장을 만들어 이들 색깔의 나무와 꽃만 심었다. 주변에 음악캠프와 다문화 교육프로램을 열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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