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인천도시역사관에 가면 1일부터 시작된 ‘동네 목욕탕―목욕합니다’를 주제로 한 특별기획 전시회를 관람할 수 있다.
1부에서 서구 문물이 유입되던 개항기에 인천항 주변에 일본인이 거주하면서 목욕탕이 생긴 사실을 알려준다. ‘1884년 일본인 정착자 19명 중 1명이 목욕업에 종사했다’라고 ‘인천개항 25주년사’에 기록돼 있다. 일제강점기에 바닷물 온천탕인 조탕(潮湯)이 월미도 등에 선보이며 관광지로 인기를 끌었다. 인천시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당시 월미도 조탕 내부가 촬영된 사진엽서가 전시된다.
일본인은 목욕탕 이용에 있어 한국인을 차별했다. 국사편찬위원회전자사료관에 소장된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의 한 심문기록에는 ‘욕탕에 우리가 가면 조선 사람은 목욕할 수가 없다며 거절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일제는 당시 사회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인만 이용하는 공설욕장을 만들기도 했다.
2부에서는 광복을 맞이한 뒤 현대에 이르기까지 바뀌어 온 목욕탕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6·25전쟁의 혼란기가 지나며 위생관념이 생겨 동네 곳곳에 목욕탕이 들어섰다. 정부에서는 생활형편이 어려운 계층을 위해 목욕탕을 갖춘 노동회관을 짓거나 새마을운동의 하나로 농어촌에 공동목욕탕을 만들었다.
목욕탕 업주들은 손님을 끌기 위해 다양한 욕탕시설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그 결과 샤워기와 바닥을 데워 찜질하는 한국 전통의 한증시설이 ‘사우나’라는 이름으로 목욕탕에 설치됐다. 몸의 때를 밀어주는 세신사와 ‘이태리타월’로 불리던 때수건이 등장하는 등 한국의 독특한 목욕문화가 탄생한 사실도 확인하게 된다.
욕조에 앉아 벽에 비친 물그림자 관람하기, 사우나실 향 맡아보기, 세신침대에 누워보기, 목욕의자에 앉아 입식 샤워기 만져보기 같은 이벤트를 즐길 수 있다. 1957년 인천 중구 신흥동에서 처음으로 문을 열어 이름이 붙은 ‘처녀 목욕탕’의 스토리가 흥미롭다. 당시 이 목욕탕이 만든 성냥갑이 전시된다.
3부에서는 목욕을 마친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공간인 휴게실을 다룬다. 과거에는 목욕탕의 부대시설은 머리와 몸에 남은 물기를 닦고 옷을 입는 탈의실 정도가 전부였지만 현대에 들어 휴게실이 생겨난다. 통행금지가 해제돼 24시간 영업이 가능해지면서 수면실과 매점, 이발소 등이 설치되며 ‘즐기고 쉬는’ 목욕탕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50년이 넘은 옷장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미추홀구 일신목욕탕의 옷장보관함 열쇠 등이 전시된다. 배성수 인천도시역사관장은 “한국인에게 무척이나 친숙한 목욕탕의 역사와 문화를 재미있게 풀어내기 위해 전시회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전시회는 내년 2월까지 열리며 인터넷에 관람 사진을 올리면 매달 추첨을 통해 목욕용품을 주는 이벤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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