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공수처 법안들이 ‘개악’인 3가지 이유

  • 신동아
  • 입력 2019년 11월 23일 17시 00분


11월 2일 서울 여의도공원 인근에서 검찰개혁 사법 적폐청산 범국민시민연대 주최로 열린 촛불 문화제. [뉴스1]
11월 2일 서울 여의도공원 인근에서 검찰개혁 사법 적폐청산 범국민시민연대 주최로 열린 촛불 문화제. [뉴스1]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수사 또는 조사하기 위한 독립기관을 두자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고위공직자부패수사처’ 등 다양한 명칭으로 법안이 발의됐다. 이들을 묶어 ‘공수처’라는 약칭으로 부른다.

‘공수처’ 대신 ‘고비처’라는 약칭이 사용된 적도 있다. 수사가 아닌 조사 기능을 담당하는 기구를 만들 경우 ‘공수처’가 적절치 않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재 국회에 상정돼 있는 법안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백혜련안)과 ‘고위공직자부패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권은희안)이므로 ‘공수처’라는 약칭이 적합하다.

검·경에 의한 수사가 정치권의 영향력 탓에 고위공직자의 직무 관련 부정부패에 대해 엄정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특히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가진 검찰이 ‘정권의 시녀’가 되면서 ‘정치검찰 논란’에 휩싸이자,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공수처 도입이 추진됐다.

공수처 도입에 참고가 되는 외국 사례로는 홍콩의 염정공서(廉政公署), 싱가포르의 탐오조사국(Corrupt Practices Investigation Bureau)이 있다. 그 밖에 영국과 뉴질랜드의 중대비리조사청(SFO·Serious Fraud Office) 등이 유사하다. 현재 국회에 상정된 법안들은 외국 제도와 유사점도 있으나 차이점도 적지 않다. 특정 제도를 그대로 옮겨온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백혜련안·권은희안, 범위·처장 임명 등 차이

검·경과 별개로 독립수사기관을 설치하자는 논의는 1996년 참여연대의 ‘부패방지법’ 입법청원에 포함돼 있던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신설안에서 처음 나왔다. 이 제안이 당시 새정치국민회의의 부패방지법(안)에 담겨 국회에 상정됐다. 이를 시작으로 20여 년 동안 수많은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고 논란도 계속됐다.

1996년 발의된 부패방지법안(류재건 의원 대표발의)은 제7장에서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에 관한 14개 조문을 두었다. 이는 1998년 12월 10일 대표 발의한 류 의원 등에 의해 철회됐다. 그리고 2001년 제정된 부패방지법에는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설치가 빠져 있었다.

이후 2002년 신기남안, 2004년 정부안, 2010년 양승조안, 이정희안, 김동철안, 2011년 주성영안, 박영선안, 2012년 김동철안, 양승조안, 이상규안, 이재오안, 2016년 노회찬안, 박범계안, 양승조안이 연이어 발의됐으나 국회를 통과하지는 못했다.

2019년 4월 26일 발의된 백혜련안과 같은 달 29일 발의된 권은희안의 경우 큰 틀은 매우 유사하다. 다만 관할 범위와 처장 임명에 관한 국회의 동의 등 몇 가지 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 되는 고위공직자의 범위는 양 법안이 일치한다. 그러나 대상이 되는 범죄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예컨대 백혜련안은 형법 제122조~제133조의 범죄(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범죄)를 모두 포함하는 반면 권은희안은 형법 제124조~제128조(불법체포·감금, 폭행, 가혹행위, 피의사실공표, 공무상 비밀누설, 선거방해)를 배제하고 있다. 대신, 권은희안은 백혜련안에 포함돼 있지 않은 변호사법 제34조 제1항(사건수임에 관한 금지사항), 제109조 제1호(변호사 아닌 자의 법률사무 취급 및 알선에 대한 벌칙)를 포함하고 있다.

백혜련안에서는 공수처장 임명에 대해 후보추천위원회에서 2명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그중 1명을 지명한 후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토록 규정하고 있다. 권은희안도 이와 유사하지만, 인사 청문을 거쳐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수사처 검사의 숫자는 25인 이내로 한다는 점에서 양 법안이 동일하다. 다만 수사관의 숫자를 백혜련안에서 30인 이내, 권은희안에서 40인 이내로 정하고 있다는 점은 다르다. 그리고 백혜련안에서는 판사, 검사, 경무관급 이상의 경찰에 대해 공수처가 기소권까지 갖도록 했다. 반면 권은희안에서는 모든 대상 범죄에 대해 기소권을 갖되, 기소심의위원회를 두고 그 심의를 통해 공수처의 기소권을 통제토록 정하고 있다.

대통령이 인사권 통해 공수처 장악하면 改惡
10월 22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며 공수처 설치와 관련해 발언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의원석에서 손으로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다. [뉴스1]
10월 22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며 공수처 설치와 관련해 발언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의원석에서 손으로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다. [뉴스1]

이 와중에 여권은 공수처의 도입과 검찰개혁을 동일시하는 태도까지 보이고 있다. 정말 공수처만 도입하면 검찰의 모든 문제가 깔끔히 해결될까? 어떤 개혁도 그 내용과 상관없이 도입 자체만으로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다. 진정한 검찰개혁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공수처의 성격과 내용이 개혁 취지에 부합해야 한다. 그런 까닭에 공수처 법안의 속 내용을 점검할 수밖에 없다. 이를 세세히 따지지 않고 공수처 도입과 개혁을 동일시하는 태도는 ‘개악(改惡)’ 가능성을 높인다.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대통령의 인사권 △조직 규모의 불합리성 △검·경수사권 조정과의 모순 등이다.

우선 대통령의 인사권 문제를 살펴보자.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검찰개혁은 다른 기관 개혁보다 우선시되고 있다. 과거 ‘최순실 사태’에서의 늑장 수사, 봐주기 수사로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만이 쌓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검찰개혁 논의는 검사들의 개인 비리에서가 아니라 검찰 조직이 ‘정권의 시녀’ 노릇을 했다는 국민적 의구심으로부터 촉발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검찰개혁의 목표는 검찰 조직 자체의 성격을 바꾸고 검찰수사의 객관성과 공정성 확보가 핵심 키워드다. 이를 통해서만 법과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검찰, 국민의 인권 보장에 충실한 검찰이 탄생할 수 있다. 따라서 검찰개혁의 가장 중요한 기본 목표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다. 공수처 도입 등의 개혁이 불필요하다는 뜻이 아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라는 목표에 초점을 맞춰야 검찰개혁이 본래 취지에 맞는 개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의미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에 가장 큰 걸림돌은 대통령의 영향력, 특히 대통령의 인사권이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과거 검찰개혁을 위해 검찰총장 임기제,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한 까닭도 대통령의 인사권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검찰총장 임기제와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제도가 실효성이 없어 공수처 도입이 필요하다면 공수처장에 대해서는 반드시 대통령 인사권이 배제돼야 한다. 대통령이 인사권을 통해 공수처를 사실상 장악하면 이는 검찰개혁이 아닌 개악이다. 또 대통령의 권한만 확대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더욱 크게 만들 우려도 있다.

권은희안의 경우처럼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더라도 현재 상황에서는 대통령 인사권에 대한 효과적 통제가 작동하리라 보기 어렵다. 국회 동의를 얻어 임명하는 국무총리나 감사원장직의 경우에도 대통령의 영향력은 절대적인 편이다. 심지어 대법원장, 대법관직 임명에도 대통령의 영향력이 매우 커서 코드 인사 논란이 반복되는 실정이다.

따라서 공수처장 임명 과정에서 대통령 인사권을 배제하기 위해서는 국회 인사 검증 이후 국회의장이 임명하는 형태를 취하는 게 바람직하다. 물론 이를 위해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그간 여야가 인사청문회에서 ‘무조건 찬성’과 ‘무조건 반대’로 대립하는 경우가 잦았다. 구체적 판단 기준에 대한 합의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관할 사건 방대, 검사는 25人뿐

이에 인사청문회법을 개정해 심사기준 및 평가요소를 정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여야가 같은 기준으로 인사 청문을 진행할 수 있고 합의에 이를 가능성도 커진다. 자연히 인사 청문 결과에 대해 여야 공히 구속력을 인정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다음은 조직 규모의 불합리성. 백혜련안과 권은희안 모두 차관급 이상 공직자와 모든 판·검사, 경무관급 이상 경찰, 장성급 장교 등을 포함한 광범위한 고위공직자를 대상으로 삼고 있다. 관련 범죄에 관해서는 두 법안 간 약간의 차이는 있다. 그러나 두 법안의 관할사건 범위는 공히 형법상의 직무유기, 직권남용, 수뢰, 사전수뢰 등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알선수재, 변호사법상의 공무원의 청탁 및 알선 명목의 금품·향응을 제공받은 경우 등을 망라해 매우 포괄적이다.

포괄적인 관할사건 범위는 고위공직자의 비리 또는 범죄를 엄정히 처벌한다는 취지에 비춰보면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직 공무원뿐만 아니라 퇴직 공무원까지 대상으로 하는 등 범위를 과도하게 확장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공수처 관할사건 범위가 방대한 반면 정작 이를 전담할 공수처의 인력 규모는 매우 ‘슬림하게’ 구성돼 있다. 백혜련안과 권은희안 모두 검사 숫자는 25인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 수사관 숫자는 백혜련안에서 30인 이내, 권은희안에서는 40인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 더욱이 두 개의 안 모두 검찰이나 경찰에서 수사관을 파견받은 경우 이를 정원에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그 취지는 공수처 조직이 방대해질 경우 비용 문제, 옥상옥 논란 등이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전직 대통령이나 대법원장, 혹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에 투입된 검사 및 수사관의 숫자를 생각할 때, 공수처의 이와 같은 조직 규모로는 대형 사건 하나도 제대로 처리하기 어렵다. 여러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경우 공수처가 사건을 제대로 처리할 여력이 없으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면 검·경은 관할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관여할 수 없고, 공수처는 인력 부족 탓에 사건을 처리할 수 없는 황당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이는 공수처를 도입해 고위공직자의 비리 내지 범죄를 엄정하게 처리한다는 입법 취지에 반한다. 또 고위공직자에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셈이라고 비판받을 수 있다.

수사권 조정, 경찰에 대한 통제 필요성 키워
2018년 6월 21일 조국 당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정부서울청사 별관 국제회의실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안’의 진행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전영한 동아일보 기자]
2018년 6월 21일 조국 당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정부서울청사 별관 국제회의실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안’의 진행 경과를 설명하고 있다. [전영한 동아일보 기자]

마지막으로 검찰로부터 막대한 수사권을 이양받은 경찰은 누가 통제하느냐는 대목이다. 누구나 검찰개혁을 말하지만, 무엇이 올바른 개혁인지에 대해서는 견해차가 크다. 견해차를 좁히기 위해 먼저 논해야 할 질문은 ‘검찰개혁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검찰의 상(像)은 무엇인가’이다.

영미의 검찰제도와 독일·프랑스의 검찰제도가 다르고,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이를 혼합할 때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최근 추진되는 검·경수사권 조정과 공수처의 연계 가능성에 대해서도 매우 조심스레 접근해야 한다.

검·경수사권 조정의 핵심은 검찰의 수사권을 대부분 경찰에 이양하고 수사지휘권을 폐기하는 것, 즉 영미식 검찰제도를 지향하는 데 있다. 이렇게 되면 검찰개혁이 그 나름대로 성공한 셈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수사권 없이 기소권만 갖는 검찰이 되면 그 힘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정권 차원에서 검찰을 이용하는 일 역시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검·경수사권 조정이 난항을 겪는 이유는 수사권을 이양받게 될 경찰에 대한 신뢰가 크지 않은 데 있다. 즉 검찰 이상으로 경찰이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하리라는 우려가 큰 데다가 검찰의 통제를 벗어난 경찰이 막강한 권력을 오·남용해 국민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과 우려가 적지 않다.

만약 검·경수사권 조정이 성공할 경우 검찰에 대한 통제 필요성은 매우 작아진다. 반면 수사권을 이양받은 경찰에 대한 통제 필요성이 매우 커진다. 따라서 공수처가 도입되더라도 주된 통제 대상은 검찰이 아닌 경찰이 돼야 한다.

이렇게 볼 때 현재 검찰개혁 법안으로 공수처 법안과 검·경수사권 조정법안(형사소송법 개정안, 검찰청법 개정안)이 상정돼 동시에 추진되는 것은 심각한 모순이다. 백번 양보해 양 제도를 동시에 추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선후는 정해야 한다. 검·경수사권 조정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경우와 그러지 못한 경우 검찰의 수사권 보유에 큰 변화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에 맞춰 공수처 법안의 내용도 달라져야 한다.

검찰개혁에 반대할 이유도 없고 공수처 도입 자체를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왕이라면 제대로 된 공수처를 도입해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를 강조할 뿐이다.

정교한 계획 없다면 공수처 도입 말아야

공수처 도입의 근거는 검찰개혁이다. 이는 수사권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행사를 통해 국민에게 봉사하는 검찰 및 공수처를 지향해야 함을 뜻한다. 그러나 앞서 살폈듯 현재 상정된 공수처 법안에는 대통령의 인사권 등 객관성·공정성에 부합하지 않는 요소가 많다. 국민을 위한 공수처가 아니라면 도입할 이유가 없다. 국민을 위한 공수처를 꾸릴 수 있는 세 가지 전제가 있다.

첫째, 대통령이 공수처 구성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공수처의 관할범위를 합리적으로 조정해 선택과 집중에 따른 효율적 수사가 가능토록 해야 한다. 조직 규모 역시 담당 사건 범위에 맞게 합리적으로 조정돼야 한다. 셋째, 검찰 수사권을 존속시킬 요량이라면 검찰에 대한 공수처의 견제가 합리적일 수 있지만, 검찰 수사권이 대부분 경찰로 이관된다면 공수처의 주된 견제 대상은 검찰이 아닌 경찰이 돼야 한다.

이와 같은 지적을 고려해 정교한 계획을 짤 생각은 없이 공수처 도입 자체가 검찰개혁의 성과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이와 같은 주장을 고수하면 수년 후 공수처의 실패를 확인하는 일만 남게 될 것이다.

장영수
● 1960년 출생
● 고려대 법과대학 및 고려대 대학원 법학과 졸업, 독일 프랑크푸르트대 법학박사
● 국회 헌법연구자문위원회, 개헌특위 자문위원회, 정개특위 자문위원회 위원 역임
● 現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저서: ‘민주헌법과 국가질서’ ‘헌법총론’ ‘기본권론’, ‘국가조직론’ ‘헌법학’ ‘대한민국 헌법의 역사’ 등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jamta@korea.ac.kr
[이 기사는 신동아 12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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