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시험 등 자격시험 중에 응시자의 화장실 이용을 제한하는 것은 인격권 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이 나왔다. 특히 변호사 시험은 경쟁정도와 난이도를 따지면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해당 과목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사실상 시험 전체를 포기하는 선택과 다를 바 없어 응시자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점도 고려됐다.
인권위는 변호사시험과 국가기술자격시험 중 응시자들의 화장실 이용을 제한하는 시험 운영 방법은 일반적 행동자유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인격권 침해로 보고 시험운영기관인 법무부 장관 등에 시험운영 방법 개선을 권고했다고 27일 밝혔다.
진정인들은 변호사 시험, 전기기능장 필답형 실기시험 등 자격시험에서 시험 중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시험운영방식은 인권침해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변호사 시험 주관 부서인 법무부는 “변호사시험 중 화장실 이용 제한은 부정행위 방지, 시험의 공정성을 위해 필요하고 일반 응시자들이 방해받지 않고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환경조성을 위한 것”이라며 “응시자가 화장실을 가는 경우 다시 입실할 수는 없지만, 퇴실 시까지 작성된 답안지는 정상적으로 채점되고, 임산부 등은 다른 고사장을 마련해 화장실 이용을 제한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자격시험을 담당하는 한 공단은 “일반인의 배뇨 간격과 다른 기관에서 주관하는 자격시험의 시험 중 화장실 이용 제한 현황 등을 참고해 화장실 내에서 부정행위 가능성 방지, 응시자가 소음으로부터 방해 받지 않도록 정숙한 시험장 분위기 조성 등의 차원에서 시험 중에 화장실 이용을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
변호사시험은 4일간(1일 휴식) 총 10과목이 진행되고, 시험시간은 1시간10분~3시간 30분이다. 수험생은 각 과목 시험시작 35분 전까지 시험실에 입실해야 하고, 시험마다 시작 20분부터는 이동이 금지된다.
시험시간 중에는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는 게 원칙이고, 시험시간이 2시간을 초과하는 민사법 기록형(3시간), 사례형(3시간 30분) 시험의 경우 시험시작 후 2시간이 경과하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국가기술자격시험 종목은 494개이고, 시험시간이 2시간 이내인 시험 종목은 시험 도중 화장실 이용을 원칙적으로 제한되며 예외적으로 과민성대장증후군 등 배뇨 관련 장애가 있는 응시자는 사전에 진단서를 제출하면 시험 도중 화장실 이용 후 다시 입실해 시험을 계속 볼 수 있다.
인권위는 2015년, 2016년에 국가기술자격시험과 공무원 선발시험에서의 화장실 이용 제한 문제에 대해 인권침해로 판단하고 각 시험 주관기관에 화장실 이용을 허용하는 방안을 시행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인사혁신처 등은 권고를 받아들여 2017년도부터 일부 지방공무원 선발시험, 7급 국가공무원 공채 시험, 5급·7급 민간경력자 일괄채용 시험 등에서 화장실 이용을 허용하는 것으로 시험 운영 방법을 변경했다. 또 대학수학능력시험, 공인회계사 1차 시험, 토익시험 등 다양한 시험에서 응시생들의 화장실 이용제한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인권위는 시험 중 불가피하게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생리적 욕구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기 때문에 헌법상 보호가치가 더 크다고 판단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대개의 시험은 그 종류를 떠나 누구에게나 신중하고 절실하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므로, 현저히 곤란한 사정이 있지 않은 이상 특정 시험에서만 화장실 이용을 제한하는 문제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누구나 그 대상자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수험생들이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화장실 이용을 제한하는 시험방법이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