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나눔]김현진 ‘코리안앳유어도어’ 대표
장애인 일자리 만들고 싶어서 한국어 전화과외 서비스 창업
강사 10명 모두 시각장애인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의 경우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게 일반의 생각이다. 사물을 제대로 보기 힘드니 촉각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그래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일자리도 안마사 등 손기술을 이용한 단순 업무만 생각한다. 하지만 김현진 씨(28)의 관점은 완전히 달랐다.
시각장애인 중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한 이들은 드물다. 90% 이상이 중도실명이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 예기치 않은 사고나 질병으로 갑자기 시력을 잃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들도 장애를 얻기 전까지 연구자를 꿈꾸는 박사였고, 교사였고, 운동 마니아였다. 김 씨는 이와 같은 시각장애인들에게 안마사나 일용직 이외에 새로운 직업의 세계를 열어주고 싶었다. 사회적 기업 ‘코리안앳유어도어’를 창업한 이유다.
○ 장애인이 가르치는 한국어 교육서비스
‘코리안앳유어도어’는 외국어로서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전화교육을 해주는 업체다. 한국인이 영어를 배우고 싶을 때 ‘전화영어과외’를 받듯이 한류나 한국의 일자리에 관심 있는 외국인에게 ‘전화한국어과외’를 해주는 셈이다. 김 대표는 지난해 말 시각장애인을 강사로 고용해 한국어 전화과외 서비스를 해주는 일을 시작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 기업에서 인턴십을 하면서 편견을 깼어요. 또 이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다닌 그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한국에 와서 경북 포항시 한동대에 진학한 뒤 틈나는 대로 유네스코와 월드비전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직에서 인턴십을 했다. 특히 정신장애인과 함께 커피를 만드는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며 일자리 하나로 장애인의 삶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는 이들과 함께 일하면서 ‘모든 사람은 저마다 아픈 구석이 있다. 그게 사회적으로 장애라는 꼬리표를 붙인 아픔인지 아닌지에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김 대표는 “어떤 면에선 세상에 정말 나쁜 것들은 ‘비장애인’들이 더 많이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며 “자신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직업을 얻은 것에 감사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이들을 위해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가가 되기로 했다”고 말했다.
○ ‘시각장애인’에서 ‘선생님’으로
현재 ‘코리안앳유어도어’에는 모두 10명의 시각장애인 강사가 활동하고 있다. 10주의 강사교육을 거친 이들은 선생님으로 불리며 해외에 있는 수백 명의 학생에게 전화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여러 장애의 유형 중에서도 김 대표가 ‘시각장애인’에게 관심을 쏟게 된 건 대부분이 중도실명을 경험했다는 점 때문이다. 신체 건강한 사회인으로 활동하던 이들은 어느 날 날벼락처럼 ‘실명’이라는 상황을 만났다. 이로 인해 앞으로 할 수 있는 직업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실감하면 더욱 좌절할 수밖에 없다.
김 대표는 1년간 회사를 운영하면서 가장 인상 깊은 인물로 ‘60대 전직 국어교사 A 씨’를 꼽았다. 이 회사의 존재를 알게 된 한 60대 여성이 전화를 걸어와 “교육을 받고 한국어강사로 일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처음 김 대표는 “부산 지역에서 매주 교육에 참여하려고 서울까지 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하지만 그는 재차 일하고 싶다는 뜻을 비쳤다. 마침내 10주 교육을 완수하고 강사로 활동하게 됐다. 그는 20여 년간 국어교사로 일하다 실명으로 교단을 떠난 사람이었다. 그 아쉬움을 이 기회를 통해 풀게 된 셈이다.
서울의 한 명문대에서 석사과정까지 마친 청년도 있다. 젊음을 바쳐 공부에 매진하던 그는 시력을 잃고 난 뒤 무기력과 우울에 빠져 한동안 집에서 칩거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 회사의 한국어 강사로 일하고 있다.
김 대표가 꿈꾸는 목표는 두 가지다. 우선 현재 베트남 중심으로 형성된 고객층을 더 크게 넓히는 것이다. 그는 “한국에 이주해 온 다문화 여성의 언어교육이나 중국에서 건너온 유학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 하나의 꿈은 ‘코리안앳유어도어’처럼 장애인들도 신체적 제약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멋진 꿈을 펼칠 수 있는 사회를 조성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여전히 한국에는 장애인 관련 일자리 정책이 부족하다”며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도 얼마든지 기회가 열려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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