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이 실시됐다. 2020학년도 수능은 과도기적 성격을 지닌다. 교육부 발표대로라면 2022학년도 수능부터 문항의 구성과 출제 범위에 변화가 생기고(‘언어와 매체’, ‘화법과 작문’ 중 택일하는 방식), 그동안 굳건하게 유지됐던 EBS 연계 방침에 상당한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2021학년도 수능은 기존 틀로 시행되는 마지막 수능이다. 고3이 되는 수험생 입장에서는 재수에 대한 부담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내년 수능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것이 중요해졌다.
2020학년도 수능 국어 영역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드러냈다. 우선 지난해의 ‘불수능’ 논란을 잠재우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둘째는 난이도 조절과 별개로 수능 국어가 그간 견지해왔던 출제의 방향과 기조는 2020학년도 수능에서도 유지됐다는 것이다. 정보의 이해와 해석 능력은 국어 시험이 지녀야 할 본질적인 평가 영역이자 4차 산업 시대를 맞이해 더욱 강조되는 능력이다. 셋째, 독서(비문학)영역에서의 고득점이 수능 국어의 성적을 좌우하는 현상이 올해에도 반복됐다.
이번 시험에 지원한 수험생은 54만8734명으로, 이 중 재학생은 39만4024명이다. 졸업생 등은 15만4710명이었다. 제1교시인 국어 영역의 실제 응시생은 49만552명이었다. 한때 80만 명대를 유지하던 수험생 수가 50만 이하로 줄어들었다.
각 입시 전문 기관의 예측에 따르면 2019학년도 수능에 비해 1등급의 등급 컷이 약 7점 상승한 것으로 예상된다. ‘불수능’ 논란에 따른 난이도 조절을 상당히 잘했다고 말할 수 있다. 2등급 혹은 3등급의 등급 컷도 지난해 수능에 비해 각각 8점, 6점 상향 조정됐다. 대체로 시험 직후 수험생들이 보인 반응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는 소감이 많았다. 등급 컷이 상승하면 ‘불수능’ 논란이 수그러드는 반면에 시험의 변별력에 관한 논란이 반비례해 커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2020학년도 수능 국어의 경우는 몇몇 문항이 변별력 확보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오답률 TOP10을 분야별로 살펴보면 독서 8문항, 화법·작문·문법 2문항이 포함돼 있다. 문학 분야에서는 오답률 TOP10에 포함되는 문항이 없었다. 독서 중에서 법과 경제 분야가 융합된 지문(37∼42)에 속하는 4문항이 오답률 TOP10에 포함되었다. 화법·작문·문법 영역에서 2문항이 오답률 TOP10에 포함되었다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수험생 입장에서는 화법·작문·문법 영역을 (특히 문법) 더 이상 ‘깔고 가는’ 문제로 여겨서는 곤란할 것으로 보인다.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뒤 벌어진 ‘불수능’ 논란 중 지나치게 장문(長文)의 지문을 출제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들이 많았다. 내용에 있어서 교육과정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 아니냐는 지적들도 있었다. 일단 겉으로 드러나는 텍스트 분량을 고려하면 2020 수능의 독서 지문 글자 수는 5670자로 2019학년도 수능의 독서 지문 글자 수 6293자에 비해 600여 자가 줄어들었다. 수험생 입장에서 지문을 독해하는 데 훨씬 부담이 줄어들었을 것이라는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기본에 충실했던 2020 수능 국어
수능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평가원)은 다음과 같이 출제 기조를 설명하고 있다. 국어 영역은 2009 개정 고등학교 국어과 교육 과정에 기초해 ‘대학 과정의 학업에 필요한 국어 능력’을 측정하는 문항을 출제하고자 했다. ‘화법과 작문’, ‘독서와 문법’, ‘문학’ 교과서에 제시된 학습 목표와 학습 활동을 바탕으로 출제했다. 지식과 기능에 대한 이해력, 출제 과목별 교과서를 통해 학습한 지식과 기능을 다양한 담화나 글에 적용할 수 있는 창의적 사고력을 중점적으로 측정했다.
평가원은 ‘화법과 작문’ 교과서에서 ‘토론과 글쓰기’를 문제화한 4∼7번 문항, ‘문학’ 교과서의 ‘문학 작품의 수용과 생산’ 등의 학습 내용을 문제화한 21∼25번 문항, ‘독서와 문법’ 교과서에서 ‘특정한 주제 혹은 화제에 대해 다양한 관점과 분야의 글들을 종합적으로 읽는 활동’을 문제화한 37∼42번 등을 이번 시험의 포인트로 적시했다. 화법과 작문이 결합된 문제 유형은 최근 반복적으로 출제되고 있다. 사고 과정의 측면에서 본다면 독서(비문학)의 지문 이해 과정과 유사하다. ‘글쓰기 전략’이나 ‘조건에 따라 표현하기’와 같은 작문 평가 요소가 결합됐다. 신계영의 ‘월선헌십육경가’와 권근의 ‘어촌기’를 문제화한 21∼25번 문항은 이른바 갈래(장르) 복합 유형의 문제로서 이전부터 있었던 낯익은 방식이다. ‘바젤 기준’을 소재로 한 37∼42번 문항은 이번 시험에서 가장 난도가 높았던 독서 지문이다. 국제법과 바젤 협약, BIS 기준이라는 금융 분야의 개념을 엮어 지문을 구성하고 이에 따라 문제를 출제했다.
1등급 관건은 고난도 독서
독서(비문학) 영역은 지난해 수능에 쏟아진 비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논란의 여지를 남기지 않으려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지문들은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깔끔하게 마무리되어 읽는 데 큰 어려움이 없고 문제들도 논란이 될 만한 요소를 가급적 배제하는 방향으로 출제됐다. 예년의 지문들에 비해 지문에 담긴 정보량이 많지 않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예전 같으면 추가적인 설명이 제시될 법한 부분에서 더 깊이 들어가지 않고 마무리하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문학은 6월에 치러진 평가원 모의고사와 동일한 구성으로 출제됐다. 고전 시가와 고전 수필 복합 유형, 현대 소설, 고전 소설, 현대시 구성으로 출제됐다. 이 중 고전 수필, 현대시 등에서는 EBS 교재 밖의 작품이 출제됐으나 그 외에는 모두 EBS에서 나왔다. 전반적으로 문제 구성이 학생들에게 친숙한 방식이었고 난이도 역시 무난한 수준이어서 문맥을 잘 따라간 학생들의 경우 답을 찾는 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 수능을 치룰 수험생을 위한 조언
앞으로 수능을 치르는 수험생은 첫째, ‘불수능’이든 아니든 상당한 난도를 지닌 독서(비문학) 지문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문에 딸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문해력을 갖추지 않고서 국어 과목에서 1등급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독서(비문학) 영역은 간접적이거나 부분적으로 이루어지는 양상을 띠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EBS 연계 교재에 대한 학습으로 거둘 수 있는 효과가 그다지 크지는 않다(물론 학습의 방법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둘째, 문법의 기본 개념을 확실히 익혀 두는 것이 고득점을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문법 문제는 총 5문항이 출제되는데 한두 문제는 고득점을 가르는 변수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문법 기본 개념은 일정한 시기에 집중 학습 기간을 설정해 두면 효과를 거둘 것이다.
셋째, 문학 영역은 EBS 연계 교재를 중심으로 학습하면서 작품 감상력을 키우는 데 주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어도 2021학년도 수능까지는 70% 이상 EBS 연계 출제라는 출제 기조가 유지될 것이다. ‘수능특강’과 ‘수능완성’에 수록된 작품들을 충실히 학습해 두는 것이 좋다. 소설처럼 특정 부분만 발췌돼 수록됐을 경우에는 작품의 줄거리 정도를 익혀 두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문학작품의 이해와 감상은 평소에 동일한 작품일지라도 ‘열린 가능성’ 혹은 ‘합리적 해석의 가능성’이라는 틀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에 접근하는 훈련이 돼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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