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회사원 박모 씨(33)는 올해 8월 말부터 출퇴근을 할 때 자전거를 이용했다. 집에서 약 1km 떨어져 있는 지하철 경의중앙선 수색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 여기서부터는 지하철로 회사가 있는 서울 을지로까지 갔다. 퇴근할 땐 반대로 수색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와 아침에 역 주변에 세워둔 자전거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박 씨는 자전거 출퇴근을 시작한 지 두 달이 조금 지난 지난달 초 자전거를 아파트 발코니로 들여놓았다. 더 이상 자전거 출퇴근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박 씨는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동안 도로 위에서 위험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박 씨의 집에서 수색역까지 이어지는 왕복 2차로의 낡은 도로는 노면이 파여 울퉁불퉁했다. 주변에 초등학교가 있어 시속 30km 이하로 맞춰진 최고 제한속도를 어기고 과속하는 차량들도 많았다. 인근에서 진행 중인 대규모 재개발사업 때문에 화물차와 중장비 차량이 수시로 오갔다. 박 씨는 “아직은 자전거로 안전하게 출퇴근을 할 수 있는 여건은 되지 않는 것 같아 자전거를 집안으로 들여놨다”고 말했다.
2018년 한 해 국내에서는 자전거가 피해 차종인 교통사고가 7618건 발생했다. 이 사고로 121명이 숨지고 7773명이 다쳤다. 사고 100건당 사망자 수는 1.6명으로 승용차의 0.5명에 비해 3배 이상 많았다. 이 통계만 놓고 보면 한국에서는 자전거가 자동차보다 더 위험한 교통수단인 것이다.
지난해 기준 서울의 자전거도로 길이는 916km다. 이 중 66.7%에 해당하는 611.6km 구간이 자전거 전용차로가 아닌 ‘보행자 겸용 도로’이다. 겸용 도로의 자전거 도로는 보행자들이 다니던 기존의 인도 보도블록과 색깔을 달리하는 차로를 새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러다 보니 자전거가 보행자를 치는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 2018년 한 해 동안 서울에서는 자전거가 인도의 보행자와 부딪친 교통사고가 62건 발생해 1명이 숨지고 64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자전거 전용차로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서울에는 기존에 자동차가 다니던 도로의 오른쪽(진행 방향 기준) 끝 차로 전체나 일부를 자전거 전용차로로 돌린 곳(전체 길이 55km)들이 있는데 이곳에 버스와 택시, 승용차 등이 불법 주정차를 해 자전거 차로가 단절되는 경우가 잦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은 지난해 자전거의 수송 분담률이 49%에 달했다. 올해 9월 4일(현지 시간) 찾은 코펜하겐 중앙역 앞 도로들은 높이에서 차이가 났다. 차도가 가장 낮은 곳에 있고 진행 방향 기준으로 차도의 오른쪽에 자전거 전용차로가 있는데 차도보다 어른 한 뼘 정도 높았다. 자전거 전용차로 오른쪽엔 인도가 있는데 역시 자전거 전용차로보다 한 뼘 정도 높은 곳에 있었다. 차량이 자전거도로를, 자전거가 인도를 침범할 수 없도록 설계한 것이다. 이런 도로 설계 덕분에 코펜하겐에서는 2017년과 지난해 2년 연속으로 교통사고로 숨진 보행자가 1명도 없었다. 스테펜 라스무센 코펜하겐시 기술환경국장은 “자전거가 도시의 주요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자전거 운전자의 안전을 위한 도로 설계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외레순해협을 사이에 두고 코펜하겐과 마주보고 있는 스웨덴 말뫼의 시청 앞 사거리. 9월 5일 찾은 이곳은 고속도로 갈림목 같은 ‘입체교차’로 설계돼 있었다. 자전거 운전자가 십(十)자로 교차하는 다른 도로를 신경 쓸 필요 없이 그대로 직진할 수 있게 돼 있었다. 두 도로 연결부의 높낮이는 완만했고 교차점은 움푹 팬 형태의 광장으로 꾸며졌다. 입체교차 설계는 차량 통행이 잦은 도로를 횡단하는 곳에 우선적으로 설계하는데 보행자와 자전거, 자동차 간의 충돌 위험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는 말뫼 시민들은 주행 방향을 바꿀 땐 방향에 맞게 한쪽 팔을 들었다. 자동차의 방향지시등 역할로 말뫼시가 자전거 보급을 위해 지속적으로 교육한 성과다. 주택가 한가운데 있는 원형 교차로에서는 모두 교차로 진입 전 속도를 줄이고, 먼저 교차로에 진입한 자전거에 진행 순서를 양보했다. 퍼스널모빌리티 운전자들도 자전거를 탈 때의 안전습관이 몸에 배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인구 약 34만 명인 말뫼의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는 5명이었다. 인구 10만 명당 1.5명으로 서울(3.1명)의 절반 수준이었다. 말뫼시의 교통정책 계획 담당자인 안드레아스 노르딘 씨는 “시민들이 이동수단으로 보행이나 자전거를 우선적으로 선택하도록 하려면 보행과 자전거 운전이 안전하다는 인식을 먼저 갖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상언 한국교통안전공단 책임연구원은 “자전거와 퍼스널모빌리티는 안전모 외에 별도의 안전장치가 없어 사고가 나면 운전자의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며 “자전거를 이동수단으로 삼는 시민들이 늘어나게 하려면 이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 하는 환경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가 조사한 2016년 서울의 보행자와 자전거 수송분담률은 26%로 승용차(27%)보다 낮았다.
▼ 유럽도 ‘킥라니’ 고민? ▼
친환경 바람 타고 이용자 부쩍 늘어… 종종 과속하거나 헬멧 안 쓰기도
인도 주행 엄격히 금지하고 GPS 이용해 강제로 속도 줄여
교통안전 문화가 오래전부터 자리 잡은 북유럽 국가 사이에서는 올해 ‘전동 킥보드’로 대표되는 퍼스널모빌리티가 새 과제로 떠올랐다.
8월 29일(현지 시간)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의 보행자 전용 도로인 칼요한게이트 거리. 이 거리 곳곳에서는 전동 킥보드를 타는 시민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지대가 높은 곳에 있는 노르웨이 왕궁에서 도심 방면으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에서도 전동 킥보드는 빠른 속도로 달렸다.
사흘 뒤인 9월 1일 스웨덴 예테보리의 대학 근처에서도 퍼스널모빌리티를 타고 학교를 오가는 학생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위태로워 보이는 장면도 눈에 띄었다. 달리는 킥보드에 2명이 함께 올라탄 학생들도 있었다. 헬멧을 쓰지 않은 학생들도 보였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자전거 도로에서는 시속 30km에 가까운 속도로 쌩쌩 달리는 퍼스널모빌리티도 많았다. 오슬로시의 교통안전 정책 담당자인 프레디 레이더 씨는 “퍼스널모빌리티는 오슬로뿐만 아니라 유럽의 도시 곳곳에서 고민거리가 됐다”고 말했다.
유럽의 각 도시는 퍼스널모빌리티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다. 전기를 동력으로 삼아 탄소 등의 대기오염원을 배출하지 않는 이동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코펜하겐과 오슬로, 스웨덴 말뫼 등에서는 퍼스널모빌리티가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이들 도시에는 자전거 도로가 잘 갖춰져 있는 데다 자전거 도로와 차도, 인도가 각각 구분돼 있어 사고 위험도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도시 모두 퍼스널모빌리티의 인도 주행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다. 퍼스널모빌리티가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말뫼시에서는 올 상반기(1∼6월)에만 퍼스널모빌리티 교통사고가 17건 발생해 3명이 중상을 입었다.
코펜하겐시와 말뫼시는 각각 이르면 내년쯤 퍼스널모빌리티 교통 안전대책을 마련해 발표할 계획이다. 오슬로시는 올 7월 공유형 전동킥보드 업체들과 함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한 원격 속도제한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전동킥보드가 광장이나 공원 등 보행자 전용구역으로 진입하면 원격 제어로 속도를 시속 5km 아래로 낮추는 것이다. 레이더 씨는 “퍼스널모빌리티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보행자들의 안전까지 확보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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