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복지를 넘어 공간복지로]
<9> 대구 중구 ‘삼덕마루도서관’, 부산 수영구 ‘F1963’
대구 중구 삼덕초등학교에서 북쪽으로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적산(敵産)가옥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일제강점기 대구덕산공립심상소학교 교장 관사로 쓰였던 1층짜리 주택(105.8m²)으로 2000년까지 학교장 관사로 활용됐다. 하지만 관사 사용을 마친 뒤 10여 년 동안 방치됐다.
중구는 2014년 8월 대구시교육청으로부터 이 건물을 넘겨받아 개보수를 추진했다. 작은 도서관과 주민 커뮤니티센터로 활용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근대 교육시설 관사의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지정 등록문화재 581호로도 지정됐다. 2017년 7월에는 동네 도서관 및 교구놀이방 등을 갖춘 문화교육공간인 ‘삼덕마루작은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적산가옥을 공립 도서관으로 활용한 첫 사례에 해당한다.
○ 적산가옥에 들어선 작은 도서관
삼덕마루는 폐가에서 연간 1만 명 이상이 찾는 대표적인 공간복지 시설로 탈바꿈했다. 공간복지는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체육시설, 독서실, 노인정 등 생활 사회간접자본(SOC) 시설을 갖춰 주민들이 편하게 복지 혜택을 누려야 한다는 개념이다.
사업 추진 초창기 일제의 잔재를 문화공간으로 꾸미는 것에 반대하는 여론도 존재했다. 하지만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미래를 여는 공간으로 가꿔야 한다는 의견에 주민들이 흔쾌히 동의했다. 삼덕마루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과 근대골목투어 코스 등 도심 관광지와 가깝다. 주변 관광지를 둘러본 후 삼덕마루를 찾는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개관 이후 최근까지 4만 명이 방문했다. 삼덕동 일대는 생태문화골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삼덕마루는 일본식 가옥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주택 구조는 다다미(일본식 돗자리)방 3개와 마루에 다락방 2개가 딸려 있는 형태다. 다다미가 깔린 교구놀이방은 어린이들이 차지한다. 보드게임과 장난감, 학습교구, 블록 쌓기 등을 한다. 방과 후 청소년들이 모여 독서 토론을 한다. 주민들은 퀼트 공예, 캘리그래피 등의 수업을 받는다.
도서관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성인 17개, 어린이 36개 등 50개가 넘는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한자와 종이접기 및 역사교실, 동화인형 등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체험 과정을 마련했다. 독서 동아리는 일반 2개, 청년 1개가 있다. 방학기간 역사 및 생태 탐방 같은 행사도 연다. 어린이들은 거의 매일 도서관을 찾는다. 아파트단지, 주택밀집 지역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다. 김미영 삼덕마루작은도서관장은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책을 읽는 습관뿐만 아니라 우정과 추억을 쌓는 문화공간이 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작은 도서관이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해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 와이어로프 생산공장이 갤러리로
부산 수영구 민락동 복합문화공간인 ‘F1963’은 1963년 설립된 고려제강의 옛 와이어로프 생산공장이 재탄생한 공간이다. 이곳은 2008년 고려제강이 공장을 경남 양산시로 옮긴 뒤 10년 가까이 방치됐고 쓰레기 무단투기의 온상으로 전락했다. 2016년 공장 시설 일부가 리모델링을 거쳐 부산비엔날레의 전시장으로 활용되면서 이 공간에 대한 새로운 활용 가능성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수영구 관계자는 “향토기업인 고려제강의 창업주가 공장을 운영하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끼친 피해 등을 고려해 주민을 위한 시설을 만들기로 했다”며 “고려제강이 흔쾌히 공장 부지를 20년간 무상으로 빌려줘서 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을 조성했다”고 말했다.
고려제강과 부산시, 수영구는 F1963에 예술전문도서관, 대형 중고서점, 커피전문점, 수제맥줏집, 공연장, 허브화원 등이 들어선 대형 문화복합공간을 만들었다. 서울에 본점을 둔 대형화랑 1곳도 이곳에 지점을 열었다. 예술전문도서관인 1963도서관은 문화예술 분야 전문도서를 비치하고 문화예술 관련 강의, 전시회, 음악회 등을 개최한다. 전시, 공연장인 석천홀은 500명 이상의 관객을 수용하며 공연, 세미나, 영화 상영 등이 자주 열리는 ‘F1963 스퀘어’는 천장이 뚫린 중정 개념의 실외 공간으로 조성됐다. 국내 최대 규모의 중고서점도 입점해 항상 책을 읽는 주민들로 북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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