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 사옥에는 O층, O층이 없다?[떴다떴다 변비행]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24일 15시 16분


“메이데이! 메이데이! 관제탑 응답하라!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선회가 힘들다!”

부산시가 김해신공항(김해공항 확장)을 반대한다며 만든 TV 홍보 영상에 나오는 대사 일부 입니다. “기존 김해공항 확장안은 안전하지 않다. 그러니 동남권 관문공항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항공기 추락 상황을 이용한 겁니다.

이 영상에 대한 항공업계의 반응은 냉정했습니다.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아무리 홍보가 필요했다지만, 항공기 추락을 소재로 한 것은 “도가 지나쳤다”는 지적입니다.

항공업계에서는 안전이 최고의 가치입니다. 안전을 위한 제도와 직원들의 노력 외에도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 등 불문율이 존재합니다. ’미신‘ 또는 ’금기 사항‘ 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 만큼 항공업계가 안전에 민감하다는 걸 보여주는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서울 시청 인근에 있는 대한항공 서소문 지점엔 4층과 13층, 14층이 없습니다. 4와 13이 죽음을 의미하는 숫자라는 인식 때문입니다. 다른 항공사들 사옥도 마찬가지입니다. 손님을 응대하는 호텔과 병원 등에서도 4층과 13층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항공기 좌석 중에도 4열과 13열을 빼놓는 경우도 있죠.

항공업계는 말도 조심합니다. 쓰지 말아야 하는 단어들이 있죠. ’OO항공사 실적 추락‘ ’OO항공 영업이익 곤두박질‘ ’실적 박살‘ 등등이 대표적입니다. 언론 보도자료에 추락이나 박살, 곤두박질, 날개 꺾임, 비상 상태 등의 단어를 절대 쓰지 않습니다. 기자들이 이런 표현을 기사에 쓰면 항공사에서 조금 순화된 표현을 써줄 수 없겠냐는 부탁을 받기도 합니다.

항공기 사진을 쓸 때도 신중합니다. 비행기가 우상향 또는 좌상향 하고 있는 사진을 씁니다. 절대 비행기 앞이 내려가는 듯한 사진을 쓰지 않습니다. 착륙 사진도 비행기가 바람을 안고 착륙하는 듯한 사진을 씁니다. 항공사에 걸려 있는 항공기 액자나 항공기 모형이 떨어지거나 기울어져 있으면 불길하다며 바로 잡는다고 합니다. 직원들이 달고 다니는 항공사 배지가 아래를 향하거나 삐뚤게 돼 있으면 이를 바로 잡아주는 직원들도 있죠.

항공기에서 상영하는 영화나 드라마에도 금기 사항이 있습니다. 항공기 추락이나 납치, 충돌 등의 주제는 절대 상영 불가입니다. 영화 중간에 추락이나 충돌 장면이 나오거나, 주인공들 대사에 추락 및 납치 등이 언급되면 그 부분을 편집해서 내보내기도 합니다.

항공사 기념품으로 골프공(쳐서 떨어지기 때문에)을 안 만드는 항공사, 항공기 모형 USB를 만들 때도 항공기를 두 동강 내지 않도록 만들 것을 규정해 놓은 항공사도 있습니다. 항공기가 처음 도입되면 고사를 지내거나 물을 뿌리는 등 안전을 기원하는 의식 행위를 하는 곳도 있습니다. 일부 기장들 중에는 천국, 천상, 파라다이스 등 사후세계를 의미하는 말을 절대 쓰지 못하도록 하는 분도 있습니다.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안전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항공업계에서는 불길함 마저 용납될 수 없을 겁니다.

다시 부산시의 홍보영상 논란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항공사고는 사고 당사자들과 가족들에겐 너무나도 큰 상처이면서 트라우마로 남습니다. 항공업계가 말 한마디, 단어 하나, 사진 한 장에도 예민한 건 항공사고의 끔찍함과 아픔을 알기에 때문이겠죠. 공항을 유치하겠다는 사람들이 항공기 사고를 홍보에 사용한 건 지나친 설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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